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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희윤 기자의 죽기 전 멜로디]자,죽이는 멜로디의 격랑 속으로

입력 | 2019-04-05 03:00:00


빌리 아일리시 1집 ‘WhenWe All Fall Asleep, Where Do We Go?’ 표지. 유니버설뮤직코리아 제공


죽기 전에 딱 한 번 노래한다는 새가 있다. 백조다. 예술가가 죽기 직전 남긴 작품을 ‘스완송’이라 부르는 이유도 이런 신화에 기반했다. 벌써 사반세기가 훌쩍 지났다. 25년 전 꼭 오늘. 한국으로 치면 식목일에 커트 코베인(1967∼1994)이 별세했다. 밴드 ‘너바나’의 리더로서 ‘Smells Like Teen Spirit’을 포함한 몇 개의 노래와 음반으로 1990년대 세계 대중음악사의 물줄기를 바꾼 로커다. 코베인이 사망한 날에 새 칼럼을 시작한다니. 기분이 묘하다.

#1. 1994년 3월 30일, 코베인은 이미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벼랑 끝에 다다랐다. 심각한 약물중독과 우울증, 자살 시도로 그는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재활병원에 들어갔다. 그날 밤, 코베인은 병원을 탈출했다. 택시를 잡아타고 공항에 갔고 시애틀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부인 코트니 러브는 실종 신고를 냈지만 그의 행적을 찾지 못했다. 4월 8일, 코베인이 자택에서 숨져 있는 것을 전기공이 발견했다. 사망 추정 시간은 3일 전, 5일이었다.

‘서서히 사라지느니 타버리는 것이 낫다(It‘s better to burn out than to fade away).’

유서는 화분 안에 들어 있었다.

#2. 돌아보면 열여덟 살 무렵, 같은 반 친구 M은 내게 큰 영향을 끼쳤다. 그 무렵, 나와 M을 포함한 몇몇 친구는 너바나를 포함한 그런지 록과 헤비메탈에 심취해 있었다. 과묵하고 내성적이었던 내가 말로 표현하지 않아 명확히 생각할 수 없었던 것들은 그가 떠벌렸기에 명확해졌다. 이를 테면 영국 메탈 그룹 ‘베놈’의 음악에 대한 그의 평은 거침없었다.

“드럼이 기타를 못 따라가서 허덕이는 것 같은 이런 느낌, 겁나 좋아!”

M이 내 생일에 녹음해 준 믹스테이프를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카세트테이프 옆면에 피처럼 붉은 사인펜으로 M이 직접 휘갈겨 쓴 테이프 제목은 ‘미친 노래들’. 세풀투라, 판테라 같은 메탈 밴드들의 과격한 곡만 모아 녹음한 카세트였다. 너바나의 곡이 딱 두 개 있었다. 2분 22초짜리 ‘Territorial Pissings’와 1분 35초짜리 ‘Tourette’s’.

#3. 요즘 두 명의 여성 싱어송라이터가 눈에 띈다. 스페인의 20대 로살리아, 미국의 10대 빌리 아일리시. 로살리아는 스페인 전통 장르인 플라멩코를 변형해 21세기 팝과 결합했다. 뷔욕의 프로듀서, 켄드릭 라마의 촬영감독과 일하는 로살리아의 작품에는 기이한 성녀의 이미지와 변칙 박자가 가득하다.

아일리시에 대해 얼마 전 너바나의 전 드러머이자 코베인의 친구, 데이브 그롤이 한 말이 있다. “록은 아직 안 죽었다. 빌리 아일리시를 봐라!”

‘유리를 밟아/혀에 스테이플러를 박아/친구를 묻어’(‘Bury a Friend’) 같은 가사를 지닌 곡으로 빌보드 차트 상위권을 점했다.

편당 1억 회 이상의 조회 수를 기록 중인 아일리시의 뮤직비디오도 기괴하다. 검은 액체를 들이마시고 검은 눈물을 펑펑 쏟는다거나, 얼굴에 여러 마리의 거미가 기어 다니는 채로 노래를 하는 게 뮤직비디오의 스토리다.

#4. 너바나의 ‘Tourette‘s’는 새된 소리로 발악하는 코베인의 음성으로 점철돼 있다. 노랫말은 비논리적 단어들의 연쇄다. 제목은 투렛증후군을 가리키는 것 같다. 틱 장애의 원인이 되는 질환. 말 그대로 가장 ‘투렛적’인 노래다.

얼마 전 아일리시를 인터뷰한 해외 매체 기자는 “이 친구는 아무래도 병원에 빨리 가봐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이 2001년생 괴짜 가수가 알 수 없는 사람들이 몰려와 자신의 살을 뜯어먹는 꿈을 자주 꾼다고 털어놨다고 한다. 좀비 대재앙 스토리를 좋아하고 악몽과 자각몽에서 음악의 영감을 얻는다는 이 10대는 오래전부터 투렛증후군에 시달려 왔다고 최근 자신의 인스타그램 계정에 털어놨다. 틱 장애를 의심케 하는 영상 여럿이 인터넷상에 오른 뒤 ‘커밍아웃’을 한 것이다.

#5. 유서에 버지니아 울프(1882∼1941)는 ‘다시 소리(환청)가 들린다’고, 빈센트 반 고흐(1853∼1890)는 ‘슬픔은 영원하리라’고 썼다. 지독한 우울 속에 마치 목숨을 걸고 하는 듯한 창작에는 뭔가 특별한 기운이 서리는 걸까. 상황이 어찌 됐든 죽음은 결코 추천할 만한 것이 못 된다. 아무도 죽지 말 것을 명령한다. 왜냐? 죽으면 죽이게 아름다운 멜로디를 더 이상 못 듣게 될 테니까. 그런 멜로디, 미친 노래들은 세상을 다 잠식할 만큼 넘쳐나니까. 죽도록 행복하다. 살아 있어서.

임희윤 기자 i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