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험구간에서 기자는 운전대 옆에 설치한 스마트폰의 유튜브 동영상 흘깃거리면서 차를 몰았다. 10년 무사고 운전 경력이어서 시속 50km 정도에선 ‘별일 없겠지’ 하는 자신감이 있었다. 하지만 물기둥을 피하지 못했다.
● 운전 중 DMB 영상 잠금 해제 방법 인터넷에 나돌아
휴대전화 사용, 디지털멀티미디어방송(DMB) 시청 등 ‘운전 중 딴 짓’으로 전방 주시를 소홀히 해 발생한 사고로 연간 수십 명이 목숨을 잃고 1000명 넘는 부상자가 나오고 있다. 운전 중 스마트기기를 이용한 운전자가 낸 사고로 2017년 31명, 2018년 23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부상자도 2017년 2029명, 2018년 1414명에 이른다.
2013년 도로교통법 개정으로 주행 중인 차량 내에서는 DMB 시청이 금지됐다. 이 때문에 국내 차량 제조사들과 국내에 차량을 판매하는 해외 제조사들은 주행 중엔 DMB 영상이 나오지 않게 해서 차를 판매한다. 주행 중 DMB 영상 잠금은 2012년 5월 경북 상주시에서 도로를 달리던 여성 사이클 선수 3명이 화물차에 치어 숨진 사고를 계기로 도입됐다. 당시 사고를 낸 60대 운전자가 DMB를 화물차를 몰았다. 삼성전자, LG전자 등이 스마트폰 초기 화면과 DMB 애플리케이션(앱)에 운전 중 사용 위험을 경고하는 문구를 넣은 것도 이 사고가 계기가 됐다.
하지만 차량 내 설정버튼을 몇 번만 누르면 DMB 영상을 볼 수 있는 ‘허점’이 있다. 유튜브에서 검색어로 ‘DMB락’이라고 입력하면 국산과 수입 차를 가릴 것 없이 차종별로 주행 중 DMB 영상 잠금을 해제하는 방법이 수십 개씩 뜬다. 휴대용저장장치(USB 메모리)를 이용한 동영상 시청, 스마트폰 화면을 차량 내 모니터에 띄우는 미러캐스트 등도 주행 중 영상 시청이 가능하게 하는 방법들이다.
유튜브, 푹 등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엔 운전 중 사용에 대한 위험을 경고하는 문구도 없다. 경찰청 관계자는 “DMB뿐 아니라 유튜브 시청에 대한 단속도 강화할 방침이다. 주행 중 차량 영상잠금 해제는 국토교통부 등과 협의해 처벌하는 방안도 추진하겠다”라고 밝혔다.
영상 시청뿐 아니라 전화 통화나 라디오 주파수 조작 등 운전에 집중하는 것을 방해하는 모든 행동이 위험하다. 특히 카카오톡 등 문자메시지 확인이나 전송은 전방 주시를 어렵게 할 뿐 아니라 운전대를 잡아야 할 두 손 중 하나를 휴대전화를 쥐는데 써야하기 때문에 사고 위험성이 더 크다. 5일 실험에서 기자는 전화 발신, 문자 전송, 라디오 주파수 조작 등을 하는 상황에서 모두 물기둥을 피하지 못했다.
운전 중 긴급 업무를 비롯한 중요한 일로 전화를 꼭 주고 받아야할 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 이럴 경우엔 인공지능(AI) 기능을 이용하면 스마트폰 화면을 확인하지 않고도 통화를 할 수 있다. 삼성전자 ‘빅스비’, 구글 ‘구글 어시스턴트’, 애플 ‘시리’ 등은 최근 향상된 음성인식으로 사용자가 말하는 “○○에게 전화 걸어줘”라는 음성명령에 따라 전화를 건다. 2015년 이후 출시된 스마트폰 사용자라면 추가 비용 없이 쓸 수 있다. 내비게이션 중 SK텔레콤의 ‘T맵’은 AI 음성인식만으로 목적지 입력이 가능하다.
한 손으로 스마트폰을 쥐는 것 대신 블루투스 기능으로 ‘핸즈프리’ 통화를 하고 두 손으로는 운전대를 잡아야 한다. 하지만 AI 기능과 핸즈프리도 불가피한 상황에서만 사용해야 한다.
김 교수부장은 “운전은 인지, 판단, 조작이 연속적으로 반복되는 과정이다. 운전할 때 한 눈을 판다면 위험한 상황에 대응할 수 없어 사고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며 “철저한 전방주시만이 사고를 막을 수 있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 세계는 지금 ‘운전 중 딴 짓’과 전쟁 중 ▼
삼성전자는 2017년 네덜란드에서 ‘인 트래픽 리플라이(In Traffic Reply)’라는 애플리케이션(앱)을 개발해 출시했다. 이 앱은 스마트폰에 내장된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등 여러 센서와 연동해 사용자가 차량 운전 중이거나 자전거로 이동 중일 때 전화, 문자메시지(SMS) 등의 연락이 올 경우 ‘지금 운전 중입니다’라는 메시지가 자동으로 발신되도록 하는 기능을 갖췄다. 네덜란드에서 운전자의 3분의 1 가량이 운전 중 스마트폰을 사용할 정도로 교통안전에 큰 위협으로 떠오른 게 개발 배경이었다. 인 트래픽 리플라이는 무료로 공개돼 북유럽에서 큰 호응을 얻었고 유사한 형태의 앱이 연이어 등장하면서 교통안전 문화를 확산시켰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처럼 스마트폰 사용, 동영상 시청 등 ‘운전 중 딴 짓’이 불러오는 위험을 정보통신기술(ICT)로 해결하려는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스마트폰 의존도가 높은 현대인의 특성상 운전 중 수신되는 전화, SMS는 물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동영상 등을 확인하려는 욕구를 어떻게 막을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다. 미국 코네티컷대 의과대학의 데이비드 그린필드 교수는 스마트폰의 콘텐츠를 확인하는 사람의 뇌에서 행복감을 주는 화학물질 ‘도파민’이 나오는 것을 밝혀내면서 운전 중 스마트폰 금단현상에 대해 경고한 바 있다.
상주=서형석 기자 skytree08@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