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영 채널A 심의실장
86세대가 정치권력을 장악한 후 세대교체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은 새롭지 않다. 45세 미만 국회의원 비율은 6.33%로 150개국 가운데 143등이다(시민단체 ‘국회를 바꾸는 사람들’ 자료). 그래서 청년 공천 할당제를 법제화해야 한다는 논의가 진행 중이다.
그런데 86세대가 여느 세대보다 근속 연수가 길고, 소득 상승률이 높으며, 오랫동안 최고소득을 점유해 다른 세대와의 격차를 벌렸다는 분석에는 눈길이 간다. 86세대의 경쟁력은 조직력이다. 산업화 세대가 학연 지연 혈연을 따지는 동안 86세대는 민주화란 목표 아래 학연 지연 혈연과 계층을 가리지 않고 뭉칠 줄 알았다. 민주화 이후 1990년대부터는 수만 개의 시민단체를 만들어 연대했는데 86세대의 1인당 가입 조직 수는 0.451개로 50년대 세대(0.209개)와 70년대(0.331개), 80년대(0.185개)보다 훨씬 많다(대졸자, 2010년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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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반론도 있다. 신광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불평등 심화의 핵심은 세대 문제가 아니라 계급 문제”라고 진단했다. 김수정 동아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86세대가 세대 간 경쟁의 승자라는 주장은 과장됐으며 부양 부담을 고려하면 86세대는 오히려 ‘낀 세대’”라고 했다. 부모 세대로부터 풍요로운 시장을 물려받고, 외환위기의 칼날을 피하고, 2000년대 닷컴 붐을 타는 등 운이 좋았을 뿐 세대 간 불평등을 의도한 게 아니라는 분석도 있다.
86세대가 누리는 기회가 운 덕분이라면 불운한 세대에 대한 책임이 사라지는 걸까. 요즘 청년들은 많이 배우고도 취업을 못 한다. 첫 직장을 갖는 데 실패하면 그 이후로는 더욱 험한 난관을 만나게 된다(상처효과·scarring effect). 혼인율과 출산율이 괜히 떨어지는 게 아니다.
청년수당이라며 돈 몇 푼 쥐여주는 일회성 정책보다는 괜찮은 일자리를 만들어내고, 공평하게 나눠 갖는 세대 간 연대가 필요하다. 산업화 세대를 대표하는 영화 ‘국제시장’의 주인공(황정민)은 “이 힘든 세상 풍파를 자식이 아니라 우리가 겪은 게 다행”이라고 했다. 86세대는 “세대의 행운을 우리만 누린 게 미안하다”는 책임의식을 가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 교수 표현대로 “밥그릇 싸움 너무 잘해서 손주 못 보는 세대”로 전락할지 모른다.
이진영 채널A 심의실장 eco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