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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은영의 부모마음 아이마음]〈73〉“하던 거 잠시 멈추고, 숙제 생각해볼래?”

입력 | 2019-03-27 03:00:00

금방 탄로 날 거짓말하는 아이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

아이는 책가방을 바닥에 내팽개친 채 열심히 컴퓨터 게임을 하고 있다. 학교에서 오자마자 컴퓨터부터 켠 듯하다. 뻔하지만 엄마는 묻는다. “숙제는 다 했어?” 아이는 컴퓨터에 눈을 고정한 채로 “했어요” 한다. 엄마가 “그럼, 가져와 봐” 해서 보니 역시나 하나도 하지 않았다. “안 했잖아, 왜 거짓말해?” 아이는 “이거 숙제 아니에요. 선생님이 하고 싶은 사람만 하라고 했어요” 한다. ‘얘가 지금 누굴 바본 줄 아나?’ 엄마는 어이가 없다.

아이는 왜 이렇게 금세 드러날 거짓말을 하는 걸까? 대표적으로 두 가지 이유를 생각해볼 수 있다. 첫째, 지금 몰두하고 있는 게임(또는 놀이나 일) 때문에 다른 일들이 다 귀찮게 느껴지는 것이다. 툭툭 생각나는 대로 뱉는 것은 귀찮고 신경 쓰고 싶지 않은 상황(질문)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어서 하는 건성건성 대답일 가능성이 크다. 이런 상황에서는 꼬치꼬치 캐물어도 솔직한 답을 듣기 어렵다. 계속해서 캐물으면 어이없게도 본인이 더 짜증을 내기도 한다.

아이의 거짓말이 이런 이유 같다면 화를 내거나 윽박지르기보다는 생각할 시간을 줘야 한다. 어렵겠지만 호흡을 깊게 서너 번 한 뒤, 시간을 정해 하던 일을 마무리하게 하거나 잠시 멈추게 한다. 그런 다음 아이와 차근차근 대화를 한다.

“엄마가 숙제에 대해 물어본 거야. 하던 거 잠시 멈추고 생각해 보겠니?”라는 식으로 대화를 시작한다. 아이가 귀찮아하고 짜증이 난 상태이므로 “엄마는 지금 너랑 이야기하는 게 무척 중요하고 소중하다고 생각해. 잠시만 이야기할까?”라고 진지한 태도를 취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너 또 거짓말하기만 해 봐라” 같은 말은 하면 안 된다. 아이가 또 생각 없이 말할 기미를 보이면 “네가 지금 생각이 안 나서 그럴 수도 있으니 잠깐 생각해 봐. 숙제가 있을 수도 있잖아?”라고 말해 준다. 이때 아이가 부모의 말을 잘 듣고 생각한 후에 대답하게 해야 한다. 다른 사람의 말을 충분히 듣고 생각하는 습관이 생기면, 이런 식의 거짓말은 줄어들 뿐 아니라 사고력도 향상될 수 있다.

결과를 예측하지 않고 생각나는 대로 툭툭 거짓말을 내뱉는 행동이 지나치게 반복해서 나타난다면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증상이 아닌지도 의심해 봐야 한다. 다른 아이에 비해 유난히 산만하고 집중력이 떨어지는 아이들은 충동적인 행동을 곧잘 한다. 그러고는 자신이 한 행동에 대해 추궁받으면 생각 없이 떠오르는 대로 대답하기도 한다.

둘째, 혼나는, 궁지에 몰리는 상황을 모면하려고 하는 것일 수도 있다. 이런 경우 아이를 궁지에 몰면 몰수록 거짓말은 더 심해진다. 처벌이나 비난이 두렵더라도 정직하게 말하는 게 ‘용기’ 있는 행동이며 ‘정직’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가르쳐야 한다. “어떻게 된 일인지 사실대로 말해 주겠니? 너를 혼내는 것이 아니고 그런 상황에서 네가 어떻게 해야 할지를 알려 주려고 그러는 거야”라고 말하며 편안하게 말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

아울러 아이가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은 만들지 않아야 한다. 예를 들어 “오늘부터는 양치질을 혼자 할 거예요”라고 말한 아이가 실제로 이를 닦지 않았음을 알게 됐을 때 “너 양치질했니?”라고 물어보게 되면 아이는 “했어요”라고 거짓말을 하기 쉽다.

이럴 때는 “엄마가 양치질 안 하고 나온 거 알고 있거든. 자, 빨리 양치질하자”라고 아이가 행동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 낫다. “칫솔에 물도 안 묻었는데 왜 거짓말을 하니?” 또는 “입에서 치약 냄새 나는지 한 번 맡아 보자”라고 추궁을 하면, 다음번에는 칫솔에 물만 묻히거나 치약만 조금 입에 물고 나오는 등 더 완벽한 거짓말로 부모를 속일 수도 있다.

아이가 사실을 정직하게 말했을 때는 절대로 혼내거나 벌을 줘서는 안 된다. 아이가 진실을 말했을 때 벌을 주거나 화를 내거나 잔소리를 하면, 아이는 또 그런 상황이 될 때 거짓말을 할 가능성이 아주 높다. 아이들은 불안해지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거짓말을 하기도 한다. 아이가 정직하게 말하면 “사실대로 말하면 혼날 수도 있었는데도 정직하게 말해 줘서 고맙구나. 엄마는 네가 정직하게 말해 주어서 고맙다”라고 격려한다. 그래야 아이는 정직하게 말하는 것이 잘한 행동임을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