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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세월호 천막, 기억속으로…

입력 | 2019-03-19 03:00:00

4년 8개월만에 완전 해체




세월호 천막 철거 18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 남단의 세월호 천막이 철거되고 있다(왼쪽 사진). 세월호 참사 희생자 유가족들이 2014년 7월 진상 규명 등을 요구하며 설치한 이 천막들은 1708일 만에 광화문광장을 떠났다. 세월호 천막 철거가 끝난 이날 저녁 광화문광장의 모습. 뉴스1·송은석 기자 silverstone@donga.com

18일 오전 10시 26분 안전펜스와 노루발못뽑이(일명 빠루) 등 각종 공구를 실은 트럭이 서울 광화문광장 남단에 들어섰다. 차에서 내린 인부들이 대기하던 인부들과 안전모, 목장갑을 나눠 착용했다. 이순신 장군 동상 앞에 안전펜스를 친 인부 20여 명에게 서울시청 관계자가 말했다. “급하게 치우지 마세요. 안전이 최우선입니다.”

오전 10시 43분 세월호 참사 희생자 유족들이 약 4년 8개월 전에 쳐놓은 천막에서 유리와 플라스틱 서랍장, 종이박스, 비닐봉투, 주전자 등을 꺼내 쌓아놓았다. 천막 곳곳에는 ‘잊지 말자 0416’ 같은 문구와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노란 리본이 보였다. 전날 유족들이 희생자 영정 사진을 치워 놓은 천막으로 들어간 인부들은 합판으로 된 바닥과 벽을 뜯어냈다. 영정 사진이 가지런히 늘어서 있던 벽에는 먼지가 덮이지 않아 뽀얀 직사각형 흔적이 남아 있었다.

철거 작업은 오후 6시 반경까지 8시간 넘게 진행됐다. 여느 철거 현장과 다를 바 없었다. 이날 광화문광장 ‘세월호 천막’은 1708일 만에 해체됐다.

천막을 세우면서 함께 설치했던 노란 리본 모양 대형 조형물은 가장 먼저 치워져 경기 안산시 추모공원으로 옮겼다. 천막 14개 동 가운데 12개 동은 5월 서울 은평구에서 공식 개관할 서울기록원으로 옮겼다. 나머지 2개 동은 유가족 측이 보관하기로 했다. 전날 서울시청 지하 서고로 옮긴 희생자 영정 사진은 모두 289위였다. 전체 희생자 304명 중 시신을 찾지 못한 9명과 영정 사진을 미리 가져간 6명을 제외한 것이다.

세월호 천막은 2014년 7월 14일 희생자 유족들이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며 농성을 하기 위해 세운 천막 3개 동에서 시작됐다. 나머지 11개 동은 같은 달 서울시에서 이들을 지원하기 위해 설치했다. 이 천막에서 일부 유족은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단식과 삭발을 이어갔다.

2014년 10월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 소속 국회의원이던 문재인 대통령도 유가족 김영오 씨 옆에서 아흐레간 같이 단식했다. 문 대통령은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 나선 2017년 3월 10일 헌법재판소가 당시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을 인용하자 전남 진도군 팽목항에 가서 방명록에 ‘미안하고 고맙다’고 이들 희생자에 대한 소감을 적었다.

세월호 천막은 2014년 8월 태풍 나크리가 상륙했을 때와 같은 달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한했을 때를 제외하곤 항상 광화문광장 이순신 장군 동상 앞에 있었다.

천막 철거에 대한 시민들의 의견은 엇갈린다.

정모 씨(42·여)는 “아직 돌아오지 않은 희생자도 있는데 천막을 철거하니 마치 ‘다 끝났다’고 사회가 생각하는 것 같아 아쉽다”고 말했다. 반면 광화문 인근에서 자영업을 한다는 이모 씨(51)는 “다시는 발생해서는 안 되는 안타까운 사건인 것은 맞지만 추모 공간이 꼭 광화문광장에 있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416가족협의회는 이날도 ‘진실 규명’을 주장하는 팻말을 들고 광화문광장에 섰지만 보수 성향 일부 유튜버는 현장에서 유족들을 비판하는 유튜브 생방송을 진행하기도 했다.

서울시는 세월호 천막이 있던 자리에 80m² 규모의 ‘기억·안전 전시공간’을 세운다. 전시실 두 곳과 시민참여공간으로 구성될 전시공간에서는 안전 관련 애니메이션과 영상 등을 상영할 계획이다. 전시공간은 다음 달 12일 시민에게 개방해 올해 말까지 운영할 방침이다.

홍석호 기자 wil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