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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박보씨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에 내 노래가 평화의 다리 됐으면”

입력 | 2019-03-01 03:00:00

3·1절 범국민대회서 韓日 양국어로 ‘봉선화’ 부르는
재일교포 2세 가수 박보씨




2월 27일 만난 재일교포 2세 평화음악가 박보 씨는 “3·1운동의 메시지는 한반도 독립에만 있지 않다. 유럽 제국주의에 눌리지 않고 아시아가 뭉쳐 평화로 나아가자는 것”이라고 했다. 송은석 기자 silverstone@donga.com

3·1운동 100주년, 서울 도심에 일본어 노래가 울려 퍼진다. 1일 오후 3·1운동 100년 범국민대회의 태평로 특설 무대에 서는 재일교포 2세 가수 박보 씨(64)가 주인공이다.

서울 서대문구에서 지난달 27일 만난 박 씨는 “해결되지 않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양국에 호소하기 위해 ‘봉선화’를 한국어와 일본어로 부르겠다. 일본어 노래에 화를 내실 분도 있을지 모르지만, 두 나라의 피를 모두 가진 내가 평화의 무지개 다리가 됐으면 하는 일념뿐이다”고 했다. 박 씨는 지난달 27일 ‘신촌블루스’의 엄인호 씨와 공연을 갖고 자신의 한국어 곡 ‘아버지’를 불렀다.

“어렸을 때 내 아버지는 인그니(임금님)처럼 무서웠죠∼.”

한국어가 조금 서툴렀기에 그의 노래는 더 묵직하게 다가왔다. 박 씨는 1955년 일본 시즈오카현에서 한국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났다. 그에게 ‘아버지’는 법적으로는 없는 사람이었다. 일본인과 결혼한 조선인을 당시 일본법은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대구 사람이었습니다. 일제강점기에 먹고살기 위해 부산에서 배를 타고 일본으로 건너왔다고 해요.”

일본인 어머니의 성을 따랐고 일본인 학교를 다닌 그에게 아버지는 엄하고 무서운 사람이었다. 그에게 한국어로 “조, 선, 사, 람”이라 가르치며 늘 자긍심을 가지라고 했다. “다녀왔습니다” “잘 먹겠습니다” “안녕히 주무십시오”는 꼭 한국어로 하도록 했다.

“아버지는 (차별받는) 한국인이었기에 엿장수, 사고 자동차 해체 작업 같은 궂은일로 생계를 이었습니다. 저도 도와야 했기에 참 싫었어요. ‘난 왜 이런 집에서 태어났을까’ 하고 생각했으니까요.”

그에게 변화가 온 건 도쿄에 있는 대학에 진학하면서다. 한일 근현대사를 깊이 알게 됐기 때문이다. 1979년, 히로세 유고라는 일본 이름으로 가수 데뷔를 했지만 이듬해 개명했다. 아버지의 성을 따서 ‘박보(朴保)’로. 그리고 그냥 노래가 아닌 평화의 노래를 부르기로 했다.

1983년부터 10년간은 미국에서 평화운동가들과 교류했다. 네바다주 핵실험장에 찾아가 노래 운동도 벌였다. 1990년대부터 한국 문화계와 인연이 닿아 2000년 엄인호 씨와 공동 음반 ‘Rainbow Bridge’를 냈다. 위안부 할머니의 투쟁기를 그린 영화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아’(2009년)의 주제가도 담당했다. ‘천황도 사죄 못한 대동아전쟁…’(‘영혼에 바치는 노래’ 중) 등 침략전쟁을 비판하고 평화를 촉구하는 노래를 만들고 불렀다.

지난달 27일 저녁 공연 첫 곡을 부르기 전 그는 관객들 앞에 머리를 숙였다.

“일본인의 피를 절반 가진 이로서 과거사에 대해 사죄드립니다.”

두 언어를 오가며 노래하던 그는 ‘아버지’만큼은 오롯이 한국어로 불렀다. “‘아버지’ 노래를 부를 땐 아버지 생각을 하지 않으려 노력해요.” 그의 아버지는 1996년 별세했다.

‘언젠가 언젠가 나도/아버지 같은 사람이 되고파라/정말로 고마워요 아버지/사랑해요 사랑해요 아버지….’

박 씨의 뺨 위로 끝내 뜨거운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