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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난 名문장]90세 피아니스트의 ‘삶 연주’

입력 | 2019-02-25 03:00:00


정은숙 출판사 마음산책 대표

“우리가 갖는 진정한 관계는 자신의 내밀한 자아의 깊이, 힘, 에너지, 광휘와 만나는 것.” ―시모어 번스틴


자신과 잘 사귀는 것이 어렵고, 자신과 관계 맺는 일이 중요하다는 건 우리 모두 알고 있다. 하지만 자조나 체념이 우리를 덮친다는 것도 안다. 그럴 때 90세에도 현역인 노(老)피아니스트의 문장에 얼마나 힘이 나는지 모르겠다. 세상보다 스스로의 노쇠한 몸이 더 두려울 나이, 자신의 한계와 그 뒤의 광휘를 알아보겠다는 저 고고함.

음악을 진지하게 연구하고 연주하면 더 나은 음악가가 될 뿐 아니라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고 힘주어 말하는 피아니스트 번스틴은 오늘도 그 가능성을 위해 하루도 빠짐없이 여덟 시간씩 연습한다고 한다. 세상에나. 변함없고 깊이 있는 예술가의 태도다.

5세부터 무대에 오른 음악적인 천재였지만, 무대 공포증 때문에 나이가 꽤 든 50세 이후 활동을 바꾸었다. 연주뿐 아니라 작곡과 교습으로도 명망을 얻었다.

배우 이선 호크가 연출한 ‘피아니스트 세이모어의 뉴욕 소네트’의 주인공이기도 한 번스틴은 무대에 오르지 않아도 언제나 피아노를 연주한다. 공연에서 은퇴한 뒤에도 연습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인정하고 싶든 그렇지 않든 우리는 연습한 대로 연주해요. 살아남으려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보다 두 배 더 준비해야 해요.”

‘살아남는다’는 표현이 어색하게 들릴 수 있는 90세 현역은 단 하루가 인생의 전부인 것처럼 산다. 관객에게 들려주려는 연주가 아니라 자신의 에너지를 끌어올리고 깊이를 잃지 않으려는 연습이며 삶의 연주인 것이다.

아름다운 삶을 사는 방식은 다양하다. 일상의 피아노에서 멀어지지 않은 이 피아니스트의 문장은 어떤 성스러운 종교적인 느낌마저 갖게 한다. 책을 만들고 파는 나의 일상에서 빛을 잃지 않으려면 어떤 자세여야 할까. 책을 안 읽는 시대라고 하니 그럼 읽힐 때까지 만들기를 택하겠다.
 
정은숙 출판사 마음산책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