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사당 전경/뉴스1
정장을 차려입은 남성을 한 무리의 사람들이 졸졸 따라갔다. 그들은 국회의사당이 잘 보이는 국회 앞마당 포토존에서 단체사진을 찍었다. 관광객으로 가득한 런던과 파리의 국회의사당 풍경을 보는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좀 더 가까이 가서 보니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풍경이었다. 익숙한 얼굴의 인솔자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출신 A 장관이었다. 국회를 방문한 자신의 지역구 인사들을 챙기고 있었던 것이다. 방문객 한 명 한 명과 손을 맞잡는 모습이 지역구 행사장을 연상케 했다.
유근형 정치부 기자
장관들의 지역구 챙기기가 불법은 아니다. 국회법 제29조 1항은 ‘의원은 국무총리 또는 국무위원(장관) 직 외 다른 직을 겸할 수 없다’고 명시하고 있다. 현역 장관도 의정 활동을 할 수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장관직을 소홀히 한다’는 비판 여론을 의식해 지역구 관련 활동은 자제하는 편이다. 한 장관의 정책보좌관은 “정치인 장관은 주말에도 지역구 가는 게 조심스럽다. 평일 대낮에 국회에서 지역구를 챙긴 건 너무 뻔뻔하다”고 했다.
사실 A 장관의 과도한 지역구 사랑은 이전부터 꽤나 유명했다. 그는 장관직에 오른 뒤에도 의원실 보도자료를 내서 지역 관련 업적을 홍보했다. 지역구 특산품인 한우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기 위해 “돼지고기는 안 먹는다”는 농담도 종종 했다. 설 연휴에는 지역구 특산물인 사과를 주변에 선물로 돌리기도 했다.
A 장관은 부처 출입기자들과 만날 때도 지역구 얘기를 자주 꺼냈다고 한다. 장관이 된 후 첫 기자단 상견례에선 장관으로서 정책 비전을 밝히기보다 “다음 총선에 꼭 당선되고 싶다”고 말했다고 한다. “내가 지역구를 못 가 아내가 대신 지역행사를 챙긴다”고도 했다. 그를 보좌하는 공무원들조차 자주 고개를 갸웃거렸다고 한다.
물론 정치인 출신 장관은 장점이 적지 않다. 관료, 학자 출신에 비해 부처를 강하게 장악하고, 추진력을 발휘해 성과를 내는 데 능하다. 하지만 국민의 삶보다는 자기 정치에 더 열정을 쏟는 장관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염불보다 잿밥이 관심인 장관 밑에서 얼마나 많은 공무원이 제대로 일하겠는가.
유근형 정치부 기자 noe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