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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농단 의혹에 두쪽된 법원…이젠 ‘상처 봉합’ 과제

입력 | 2019-02-11 14:33:00


 양승태(71·사법연수원 2기) 전 대법원장이 11일 구속기소되면서 검찰의 사법농단 의혹 수사가 사실상 마침표를 찍게 됐다. 사법부가 지난 2여년간 내부를 잠식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의 그림자를 떨치고 개혁에 본격 나설 수 있을 지 주목된다.

서울중앙지검 수사팀(팀장 한동훈 3차장검사)은 이날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로 양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을 재판에 넘겼다. 이미 재판을 받고 있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도 추가 기소했다.

이번 사건의 정점으로 꼽히는 양 전 대법원장을 재판에 넘기면서 검찰은 지난해 6월 이후 8개월여간 벌여온 사법농단 수사를 사실상 마무리할 계획이다. 그에 따라 사법부도 세 차례의 내부 조사와 검찰 수사를 거치면서 2년여간 겪어온 내부 갈등을 봉합할 수 있을 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일단 법원이 과거 수장을 스스로 심판해야 하는 난감한 상황에 빠지면서 향후에도 혼란이 계속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반면 수사가 일단락되면서 그간 계속됐던 논란에 마침표를 찍고 법원 내부를 추스릴 기회가 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취임 1년5개월동안 이어졌던 이번 사태를 김명수 대법원장이 벗어날 수 있을지 그 리더십도 주목받고 있다.

양 전 대법원장이 42년간 몸담았던 사법부에 결국 피고인으로 돌아오게 된 것은 지난 2017년 불거진 이른바 ‘판사 블랙리스트’ 의혹에서 시작됐다.

이 의혹은 그해 3월 법원행정처가 법원 내 연구모임인 국제인권법연구회의 학술대회 연기 및 축소 압박을 가했다는 보도 이후 불거졌다. 행정처 심의관으로 발령 난 이탄희 판사가 그같은 지시에 항의해 원소속으로 돌아갔고, 이규진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으로부터 ‘판사들 뒷조사한 파일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는 내용이 알려지면서 의혹이 확산됐다.

이후 양 전 대법원장은 이인복 전 대법관을 위원장으로 한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했다. 진상조사위는 조사결과 법원행정처의 사법행정권 남용 행위를 인정했지만 ‘판사 블랙리스트’ 의혹은 실체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의혹은 사그라들지 않았고 그해 6월 열린 전국법관대표회의에서는 추가조사를 요구했다. 하지만 양 전 대법원장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세달 뒤 그대로 퇴임했다. 그는 당시 “사법행정의 최종 책임자로서 큰 심려를 끼쳤다”면서도 “다시 조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조사를 거부했다.

그 뒤 김 대법원장이 취임했지만 추가조사 여부를 둘러싼 법원 내 의견 대립은 계속됐다. 김 대법원장은 판사들의 의견을 수렴한 후 취임 한달여를 넘긴 그해 11월 추가조사를 결정했다.

추가조사위원회는 지난해 1월말 “특정 판사들의 동향이나 성향을 광범위하게 수집한 문건이 있다”는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특히 법원행정처가 원세훈 전 국정원장 항소심 판결 선고 전후로 청와대와 의견을 나누고 재판부 동향을 파악하려 한 정황이 담긴 문건이 공개되면서 파장이 커졌다.
조사과정에서 진상조사위와 달리 의혹이 제기된 법원행정처 컴퓨터를 조사했지만, 당사자 동의 여부를 두고 내부 찬반 의견이 팽팽히 맞서기도 했다. 조사 후에는 임 전 차장 컴퓨터 등이 조사되지 않은 점 등 한계도 지적됐다.

이에 김 대법원장은 조사결과를 보완하고 조치방향을 논의할 기구 구성을 예고했고, 지난해 2월 안철상 전 법원행정처장을 필두로 한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관련 특별조사단’을 꾸렸다.

특별조사단은 지난해 5월 양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가 사법행정권을 남용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관련 문건이 공개되면서 법원행정처가 상고법원 설립을 위해 청와대 등과 교감하며 재판에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후폭풍이 거세게 일었다. 판결 당사자들이 대법원 기습시위에 나섰고 시민단체들이 잇따라 양 전 대법원장 등을 검찰에 고발했다.

조사단이 관련자들의 형사조치를 취하지 않겠다고 밝히면서 ‘셀프조사’ 한계 논란도 일파만파 커졌다. 김 대법원장은 대국민사과문을 발표하고 법원 내외부 의견을 종합해 형사상 조치 여부를 최종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소장 판사들은 수사를 촉구하는 반면 고참 판사들은 반대하는 상반된 입장을 내놓으면서 판사사회가 양분됐다는 지적도 나왔다.

김 대법원장은 지난해 6월15일 사법행정을 남용한 관련자들에 대한 형사고발이나 수사의뢰 등의 조치를 하지 않되 이미 이뤄진 고발에 따라 수사가 진행될 경우 협조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에 따라 검찰은 같은달 18일 이 사건을 특수부에 재배당하고 본격 수사에 착수했고 8개월여가 지난 이날 사법부의 최고 결정권자였던 양 전 대법원장을 재판에 넘겼다. 시발점이 됐던 법관 인사 불이익 조치 등 혐의도 공소장에 포함했다.

한편 사건이 촉발되는 계기가 된 이탄희 판사는 최근 법복을 벗었다. 그는 법원 내부게시판에 “지난 행정처를 중심으로 벌어진 헌법에 반하는 행위들은 건전한 법관사회의 가치와 양식에 대한 배신이었다”며 “미래 모든 판사가 독립기관으로서 실질을 찾아가길 기원한다”는 마지막 인사를 올렸다.

【서울=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