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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각장애 태권소녀의 ‘취업 뽀개기’

입력 | 2019-01-19 03:00:00

농아인올림픽, 금-은 딴 김진희씨… 지원하는 회사마다 면접서 고배
장애인체육회 취업 프로그램 통해 SW교육 등 받고 파고다그룹 입사
“선수생활서 얻은 인내심 덕분”




태권도 데플림픽 금메달리스트 출신 김진희 씨가 서울 서초구에 있는 자신의 새 일터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 씨는 “자긍심을 가질 수 있는 직업을 찾은 것 같아 기쁘다”고 말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취업 소식에 부모님이 너무 좋아하셨어요. 아마 예상 못 하신 일이었을 거예요.”

선천성 청각장애로 말을 못 하는 딸에게 부모님은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태권도를 시켰다.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될 것”이란 말과 함께였다. 한동안 탁구로 전향했다 태권도로 돌아온 딸은 2013년 소피아 데플림픽(농아인올림픽)에서 금메달 1개, 은메달 1개를 따며 최고의 순간을 맞았다.

‘청각장애 태권소녀’였던 김진희 씨(30)는 최근 파고다교육그룹 신입사원으로 입사하며 새 인생을 시작했다. 김 씨가 취업난을 뚫을 수 있었던 데는 대한장애인체육회 체육인지원센터(센터장 이현옥)의 역할이 컸다. 체육인지원센터는 지난해 11월 은퇴 선수들의 사회 진출 지원 프로그램을 시작해 연말에 첫 수료생 40명을 배출했다. 이곳에서 스포츠 지도자 자격을 따기 위한 과목을 포함해 자기소개서와 이력서 쓰는 법, 면접 요령 등을 배운 김 씨는 이 프로그램을 통해 취업에 성공한 첫 사례가 됐다. 파고다교육그룹이 장애인체육회와 업무협약을 맺어 장애인 선수 언어 교육 및 은퇴 선수 고용을 지원하기로 했던 덕분이다.

장애인 선수 출신들이 사회에 진출하는 것은 쉽지 않다. 특히 청각장애인은 ‘의사소통이 안 된다’는 선입견 탓에 취업이 더 어렵다.

“이전에도 지원했던 회사가 몇 곳 있었어요. 1차 서류 전형은 대부분 합격했는데 면접만 보면 떨어졌습니다. 메신저나 필담으로 의사소통이 가능하다고 설명했지만 아무래도 ‘말할 수 있는 직원’을 원했겠죠.”

김 씨는 주로 엑셀과 파워포인트를 활용해 업무를 한다. 보고와 지시는 카카오톡을 이용한다.

“말 없어도 일할 수 있는 세상이에요. 선수 생활을 통해 얻은 인내심과 성실함을 바탕으로 열심히 일할 겁니다.”

유치원부터 고교까지 청각장애 특수학교인 서울삼성학교를 다닌 김 씨는 신성대 태권도학과를 졸업했다. 백석대에 편입해 특수체육학과를 마친 김 씨는 “컴퓨터 관련 공부를 미리 해 놓으면 업무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장애인 선수들에게 조언했다.

김 씨와의 인터뷰는 청각장애인을 위한 음성통역 애플리케이션(앱) ‘소보로’(소리를 보는 통로)를 설치한 노트북을 사용해 진행했다. 기자가 말하면 노트북 화면 왼쪽에 질문이 떴고, 이를 본 김 씨가 키보드를 누르는 대로 화면 오른쪽에 대답이 적혔다. 말로 오가는 것보다 아주 조금 더딜 뿐이었다.
 
이승건 기자 w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