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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구자룡]미중 수교 40년

입력 | 2019-01-02 03:00:00


미국과 국민당 장제스 정부의 중국은 2차대전 때는 반(反)파시스트 연합국이었다. 하지만 종전 후 1949년 중국이 공산화돼 ‘죽의 장막’ 속으로 들어가면서 냉전 상대방으로 바뀌었고 한국전쟁 때는 서로 총부리를 겨눴다. 전환점은 리처드 닉슨 미 대통령이 1969년 남태평양의 괌에서 발표한 ‘닉슨 독트린’이었다.


▷“우리가 그들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그들의 존재를 거부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닉슨의 이 말에 미국의 전략적 고려가 함축되어 있다. 두 나라 모두 소련에 공동 대응할 파트너가 필요했고 특히 중국은 문화대혁명 10년의 상처를 딛고 개혁개방의 길로 가는 데 미국이라는 경제 선진국의 도움이 필요했다. ‘핑퐁외교’를 거쳐 마침내 1979년 1월 1일 미중 수교 협정이 발효됐고 덩샤오핑은 바로 미국을 방문해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것은 모두 흡수하고 싶다”며 환심을 사기 위해 노력했다.

▷덩샤오핑이 1997년 2월 사망하기 전 생애 마지막으로 중국 밖으로 나갔던 미국 방문에서 하이라이트는 존슨우주센터의 우주왕복선 비행 시뮬레이터 체험이었다. 수행했던 부총리는 착륙 과정을 두 번이나 경험한 후에도 떠나려고 하지 않았다. 그랬던 중국인데, 달 탐사선 창어 4호가 3, 4일경 미국보다 먼저 달의 뒷면에 착륙할 예정이다. 중국 경제는 2010년 일본을 제치고 미국을 추격하고 있다.

▷“중국이라는 사자는 이미 깨어났다.” 시진핑 주석은 2014년 나폴레옹 1세가 했다는 말에 빗대 중국 굴기의 자신감을 이렇게 표현했다. 중국을 ‘웅크린 호랑이’에 비유하며 “탐욕에 눈먼 중국이 세상을 지배하면 지구의 종말이 시작된다”고 경고했던 피터 나바로 교수가 현재 백악관 무역제조업 정책국장으로 대중 무역전쟁을 지휘하고 있다. 중국은 ‘투키디데스 함정(기존 강대국과 신흥 강대국 간 갈등)’은 없을 것이라 안심시키지만 나바로는 1500년 이후 15번의 세력 교체 중 11차례 전쟁이 발생했다고 경고했다. 수교 40주년인 1일 양국 최고 지도자는 ‘협력’의 메시지를 교환했지만 미중 관계는 험한 바다처럼 예측 불가하다.
 
구자룡 논설위원 bonh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