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영수-임창용-장원준-윤성한(왼쪽부터). 사진|스포츠동아DB·스포츠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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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영수는 내년 우리 나이로 서른아홉이 된다. 투수는 야수보다 대개 선수 수명이 짧다. 황혼기다. 모든 선수는 뜨겁고 강렬한 마지막을 꿈꾼다. 그러나 누구나 이승엽이 될 수는 없다. 배영수는 KBO리그 현역 최다승 투수다. 통산 137승(120패)으로 9승만 더 올리면 역대 최다승 4위 선동열(146승·40패·132세이브)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여전히 평균 시속 139㎞의 공을 던진다. 관록이 더해진 커맨드는 150㎞ 이상을 던졌던 전성기보다 뛰어나다는 것이 객관적인 시각이다. 그러나 올 시즌 한화 이글스 유니폼을 입었던 배영수는 현재 소속팀이 없다. “공이 좋아서 공을 내려놓을 수 없다. 연봉? 보직? 신경 쓰지 않는다. 마흔까지는 던지고 싶다”고 말하지만 아직 손을 잡아주는 구단은 없다.
100승 투수. 신인 투수라면 누구나 목표로 정하는 영광스러운 타이틀이다. 위대한 투수들만 오를 수 있는 고지다. 1982년 KBO리그 출범 이후 100승 투수는 단 30명 뿐이다. 이 중 현역 100승 투수는 9명이다. 그러나 2019년 이 숫자는 어떻게 바뀔지 아무도 알 수 없다.
2018년 겨울은 100승 투수들에게 시련의 계절이다. 배영수는 만24세였던 2005년 통산 60승을 달성했다. 200승은 물론 250승도 불가능해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전성기에 찾아온 부상은 치명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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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리그에서만 130승 258세이브(86패)를 올린 임창용(42·전 KIA 타이거즈)도 새 팀을 찾고 있다. KBO는 물론 일본프로야구, 메이저리그까지 경험한 대 투수지만 올해 겨울은 쓸쓸하다.
통산 129승으로 최다승 8위에 올라있는 장원준(33·두산 베어스)은 FA 자격을 다시 얻었지만 신청을 한해 뒤로 미뤘다. 아직 30대 초반으로 긴 시간이 남아있다. 따뜻한 소속팀도 있다. 그러나 남아있는 길은 지금까지와는 다르다. 8시즌 연속 이어진 두 자릿수 승수는 올해 중단됐다. 리그 정상급 선발투수는 시즌 중반 불펜으로 자리를 옮겨야 했다. 2019년은 장원준에게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연봉도 크게 삭감되겠지만 신인시절 이후 한번도 걱정해 보지 못했던 치열한 선발 경쟁을 앞두고 있다. 여기서 밀려나면 150승 이상을 꿈꾸던 좌완 투수의 야구인생 후반부는 험난해 질 수 있다.
KBO 역사상 유일한 외국인 100승 투수 더스틴 니퍼트(37)는 25일 KT 위즈와 작별했다. 조건 없는 이별로 어떤 팀과도 새로운 계약 협상이 가능하다. 그러나 이것은 그만큼 니퍼트가 더 이상 매력적인 외국인 투수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삼성에서 자유계약선수로 풀린 장원삼(35·통산 121승 93패)은 최근 LG 트윈스에 입단해 마지막 기회를 얻었다. 그는 2015년 왼손 투수로는 역대 두 번째로 100승을 달성했다. 당시 나이는 32세였다. 그러나 2016년부터 올해까지 매년 승수는 5승, 4승, 3승으로 추락했다.
장원삼이 100승 투수가 된 날 통산 최다승 기록 보유자 송진우(210승·153패·103세이브) 현 한화 이글스 투수코치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서른하나에 100번째 승리를 기록했다. 당시 훗날 내가 200승을 넘어설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간절히 소망한다. 장원삼이 내 기록을 꼭 깨주기를…. 그동안 배영수, 손민한 등 많은 투수들이 새로운 최다승 투수가 되기를 응원했었다. 기록은 꼭 깨져야 한다.”
내일의 일은 아무도 알 수 없지만 송 코치의 바람대로 200승은 새로운 주인공을 쉽게 허락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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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한 200승 투수 송 코치는 롱런의 비결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얼마만큼 체력이 떨어지는 속도를 줄이느냐가 중요하다. 나이가 드는데 체력을 키우기는 어렵다. 투수에게 1㎞의 속도보다 훨씬 가치 있는 것은 1㎝의 정확함이다.”
이경호 기자 rus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