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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깔세까지…” 대한민국 상권 1번지 명동에 드리운 불황의 그림자

입력 | 2018-11-24 13:48:00

최근 중국인 관광객 늘면서 상권 활성화 기대감도





서울지하철 4호선 명동역 6번 출구로 나와 을지로로 향하는 큰길이 명동대로다. 명동에서 활동하는 부동산중개업자 사이에서는 명동대로를 기준으로 해 좌측으로 한 블록 떨어진 도로는 1가, 우측으로 한 블록 떨어진 도로는 3가, 유네스코회관에서 명동성당까지 이르는 명동 주요 도로는 유네스코길로 불린다(지도 참조).

임시 점유자 명동 진출

서울 중구 명동에 들어선 유니클로의 플래그십 스토어(오른쪽)와 지하 1층 마트. [구자홍 기자, 사진 제공 · 유니클로]


최근 명동 3가 MCM 매장 맞은편 건물 1층에 ‘대형마트’가 들어섰다. 이마트, 롯데마트 같은 대기업 프랜차이즈 매장이 아니라 과자와 김 등 포장된 한국 식품을 판매하는 ‘코리아마트’다. 이 매장은 인테리어는 최소화하고 진열대에 과자를 전시해놓은 뒤 그날 그날 판매 가격을 써 붙여 관광객을 상대로 장사한다. 코리아마트 바로 앞에는 신한은행 건물이 재건축 중이다. 코리아마트는 명동 3가 초입 외에도 주변에 한두 곳 더 들어설 채비를 하고 있었다. MCM 매장 앞에 자리한 한 상가도 마트 입점을 위한 인테리어 공사가 한창이었다. 명동대로 초입에 있는 유니클로와 CGV가 입점해 있는 대형건물 지하 1층도 대형마트로 변신했다. 의류 매장이 나간 뒤 세계 여러 나라의 과자를 모아 파는 과자가게가 문을 연 것이다. 화장품과 의류, 스포츠 패션, 그리고 신발과 액세서리 등 다양한 상점이 포진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상권 1번지로 여겨지던 명동에 ‘반짝 마트’가 등장한 이유는 뭘까.

명동 3가 MCM 매장 앞에 위치한 대형마트(위). 지난해 2017년 12월 24일 오후 명동 거리의 가게마다 ‘반값 세일’ 피켓을 들고 호객행위를 하고 있다. [구자홍 기자]


명동 1가에서 3가 사이 이면도로, 그리고 1가에는 세입자가 철시한 빈 상가가 적잖게 눈에 띄었다. 문 닫은 가게 앞은 애연가들의 흡연 장소로 활용되고 있었다. ‘깨진 유리창의 법칙’이 불 꺼진 명동 상가에서 재현되고 있는 모습이었다. 명동에 빈 상가가 크게 늘면서 공실률을 낮추려는 건물주들이 초단기 3~6개월 임대를 내놓는 이른바 ‘깔세’가 등장했다. 부동산중개업자 A씨는 “깔세는 정식 계약을 체결한 세입자가 들어오기 전 짧으면 3개월, 길면 6개월 정도 임대를 내놓는 것”이라며 “세입자가 월세를 한꺼번에 미리 선지급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특히 정식 매장은 인테리어 비용이 많이 들지만 마트는 진열대만 설치하면 곧바로 장사를 시작할 수 있어 최근 마트가 많이 들어왔다. 깔세가 등장했다는 건 그만큼 명동 상권이 어려워졌다는 방증이다. 부동산중개업자 B씨는 깔세 때문에 명동 상권이 흐려지고 있다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한두 달 장사해보고 돈이 좀 된다 싶으면 더 있겠다 하고, 장사가 안 되면 금방 철수한다. 장사가 잘 되면 이미지가 나빠지고, 잘 안 되면 상권 전체에 타격을 줄 수 있다.” 

다음은 B씨와 나눈 대화를 일문일답 형식으로 정리한 내용. 

명동에 깔세로 세를 놓은 매장이 얼마나 되나. 

“몇 달 전부터 몇몇 매장이 깔세로 나갔다고 하더니, 점점 늘어나는 것 같다.” 

깔세가 느는 이유가 뭐라고 보나. 

“명동대로변 대형매장은 대기업이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고자 비싼 세를 내고 임차한 경우가 많다. 명동은 임대료 부담이 커 개인이 세를 얻어 장사하기가 쉽지 않은 구조다. 그런데 최근 몇 년 새 임대가 잘 안 나간다. 특히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이후 명동 상권이 크게 어려워졌다. 한동안 유커(중국인 단체관광객)들로 명동 상권이 활기를 띠었는데, 사드 이후 크게 침체됐다.”


“명동은 터지기 일보 직전 상황”

화장품 브랜드숍 매장이 늘어선 명동 거리. (왼쪽) 명동 거리의 폐업한 한 의류 매장. [뉴시스]



명동 거리에는 중국인은 물론, 동남아인 관광객도 꽤 많이 눈에 띄던데…. 

“관광버스 수십 대로 실어 나르는 대규모 관광객이 명동에 풀려야 장사가 좀 될까, 개인이나 관광버스 몇 대가 찾아오는 정도로는 별 도움이 안 된다. 다행히 최근 중국인 관광객이 다시 늘고 있는 추세다.” 

상인들은 명동 거리를 오가는 관광객 수가 예전 수준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지난해보다 확실히 늘었다고 입을 모았다. 명동대로에서 마스크팩 샘플을 나눠주던 한 상인은 “올여름을 지나면서 중국인 관광객이 늘어난 건 사실”이라며 “하지만 매장마다 매출 사정은 제각각”이라고 말했다. 명동 상가에도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비슷비슷한 화장품 매장이 연달아 문을 연 곳에는 손님이 상대적으로 뜸한 반면, 가뭄에 콩 나듯 자리 잡은 액세서리 및 모자 매장 등에는 제법 사람들이 북적였다. 출출한 오후 시간이라 그런지 명동 거리에서 사람이 가장 많이 들어찬 곳은 음식점이었다. 떡볶이와 어묵 등 길거리 음식으로 추위를 이기려는 관광객도 제법 많았다. 

명동 부동산업계에서 터줏대감으로 통하는 C씨는 “지금 명동은 터지기 일보 직전 상황이다. 건물주는 위기감에 휩싸여 있고, 세입자는 마지못해 남아 있는 경우가 많다. 보증금도 낮아지고 임대료도 크게 떨어졌지만 좀처럼 나아질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C씨는 마트가 들어선 명동 3가 신축 건물에 대해 “새로 짓고 1년 가까이 세가 안 나가다 보니 건물주가 장기간 비워놓기 뭐해 임시로 임대를 내준 것”이라며 “원래는 보증금 20억 원에 월 1억7000만 원가량 받아야 하는 건물인데, 훨씬 싼값에 단기 임대를 줬다”고 설명했다. 

해당 마트에서는 박스에 담긴 과자묶음이 4900원, 6200원에 팔리고 있었다. 이런 과자를 얼마나 많이 팔아야 월세를 감당할 수 있을까. 기자가 명동을 찾은 11월 12일 오후에는 마트를 찾는 손님도 그리 많지 않았다. C씨는 “정식 임대에 비해 깔세 임대료가 턱없이 낮은 수준”이라며 “건물주가 견디다 못해 임시방편으로 내놓다 보니 제값을 받기 어렵다”고 말했다.

일본인은 마사지, 중국인은 화장품

올해 9월 한국 쇼핑 행사 때 명동 거리 모습. [동아DB]


명동은 2000년대 초 일본에서 한류 열풍이 거셀 때 반짝 특수를 누렸다. 한국을 찾는 일본인 관광객이 크게 늘면서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침체됐던 명동 상권이 활기를 띠었던 것. 이후에는 한류 영향으로 중국인 단체관광객이 대거 명동을 찾았다. 

C씨는 “일본인 관광객은 마사지숍과 사주카페에 주로 가고, 중국인 관광객은 화장품 매장을 즐겨 찾는다”며 “어느 나라 관광객이 명동을 많이 찾느냐에 따라 임대업종에 부침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런데 최근에는 화장품 매장이 지나치게 난립하면서 오히려 상권 퇴조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명동 안쪽 블록은 전체가 화장품 매장이라고 할 만큼 난립해 있는 상태다. 중국인 관광객이 한국 화장품을 좋아한다고는 하지만, 비슷비슷한 매장이 빼곡히 들어서면서 차별화가 안 됐다. 액세서리와 의류, 화장품, 특산품, 음식점 매장이 골고루 있어야 쇼핑하는 재미를 느낄 수 있을 텐데, 화장품 매장만 넘쳐나니 관광객들이 대형 화장품 매장 한두 곳만 둘러보고 떠나는 것이다.” 

명동에 입주한 대형매장의 경우 대부분 대기업이 직영하거나 플래그십 스토어 형태로 다양한 매장을 직접 임대해 운영한다. 그런데 과거 하루 매출액이 1000만 원을 상회하던 상가가 현재는 500만 원 수준으로 반 토막 났다고 한다. 이런 매출 규모로는 대기업조차 버티기 힘들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고 있다. 명동 1가와 3가 사이에서 부동산중개업을 하는 D씨는 “억대 임차료를 내고, 직원들 월급 주고, 전기요금 등 세금 내고 나면 오히려 밑지는 매장이 적잖다”며 “대기업이 명동에서 철수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것이 더 나쁜 징조”라고 말했다. D씨는 “1997년 외환위기 때도 명동이 이렇지는 않았다”면서 “그때보다 건물주와 상인들이 체감하는 경기는 더 나쁜 것 같다”고 말했다.

외환위기 때도 이렇지는 않았는데…

D씨에 따르면 명동이 화장품 매장 천국으로 변하면서 의류 매장 퇴조 현상이 뚜렷해졌다고 한다. 특히 한때 유니클로와 ZARA, 데상트 등 외국계 대형의류매장이 입점해 토종 브랜드 매장이 크게 위축됐다. 

“명동에서 옷이 날개 돋친 듯 팔릴 때는 이랜드그룹이 명동 요지에 알짜 상가 몇 군데를 열었다. 그런데 지금은 두 곳 정도 남겨두고 대부분 철수했다. 의류 대기업이 그런 상황인데, 보세 의류상가들은 어떻겠나.” 

명동 1가에 위치한 한 의류 매장은 ‘1+1=10,000원’이라고 적은 가격표를 붙여놓고 셔츠를 팔고 있었다. 마스크팩의 경우 ‘10+10’을 넘어 ‘20+20’ 상품까지 등장했다. D씨는 “11월이 3분의 2나 지났는데 이달 들어 임대 문의가 한 건도 없었다”고 말했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명동 상권은 내국인보다 관광객 비중이 커 외부 원인에 따라 상권이 크게 좌우된다”며 “관광객이 감소하면 매출도 함께 떨어지는 구조”라고 말했다. 다만 고 원장은 “명동은 홍대 앞, 강남과 함께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글로벌 상권인 만큼 단기적 어려움을 견뎌내면 장기적으로는 다시 살아날 수 있는 지역”이라고 내다봤다. 

최근 들어 명동에 중국인 단체관광객이 다시 돌아오고 있다. 2016년 한국을 찾은 중국인 관광객 수가 800만 명을 넘어섰지만 그해 가을 터진 사드 여파로 지난해에는 416만 명으로 사실상 반 토막이 났다. 그러던 것이 올해 들어 서서히 관광객 수가 회복되는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7월 한국을 찾은 중국인 수는 41만 명을 넘어섰고 8월 47만 명, 9월 43만 명을 기록했다. 중국인 관광객 수가 늘면서 명동 상권에도 온기가 돌기 시작했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대한민국 상권 1번지 명동에 다시 훈풍이 불 수 있을까.

구자홍 기자 jhkoo@donga.com

<이 기사는 주간동아 1165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