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수 성균관대 경제대 교수
우리 경제가 위기라 생각한다면 그것은 실제로 경제가 위기라서가 아니라 외부 여건이 비우호적으로 바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응한 운신의 폭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올해 9월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금리 인상은 글로벌 금융시장에 후폭풍을 몰고 왔다. 위험자산에 대한 재평가가 일어난 것이다. 연준이 제시한 향후 정책금리 예상이 실제로 일어난다면 신흥국에 내년은 시련의 해가 되고, 글로벌 경제의 성장 랠리는 2년 만에 끝날 것이다.
대규모 자본 유출이 외환과 금융시장에 미칠 혼란을 생각하면 한국은행의 통화정책은 연준의 통화정책 방향에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다. 금리 인상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대표적 안전자산인 국채를 비롯해 채권시장에 큰 흔들림은 없었다. 그러나 미래를 예단하기는 어렵다. 비록 금리 역전이 처음은 아니나 장단기 금리 모두 역전된 것은 전례가 없기 때문이다. 국채시장에서 자본 유출이 시작되는 특이점이 올지는 연준의 통화정책에 달린 문제만은 아니다. 차이나 리스크는 또 다른 해외 요인이다. 우리 경제는 중국과 무역과 투자로 긴밀하게 연결돼 있으며 이 연결고리는 차이나 리스크가 국내로 파급되는 빌미를 제공한다.
가계부채는 또 다른 장애다. 국제통화기금(IMF)의 글로벌금융안정보고서는 가계부채가 GDP 대비 70%를 넘어설 때 성장을 저해한다는 분석결과를 내놓았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우리나라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이미 2006년 4분기에 70%를 넘어서 올해 1분기 95.2%를 기록했다. 금리인상의 파급효과가 예전보다 더 클 것임을 예고한다. 그동안 저금리를 별 거리낌 없이 받아들인 것은 저성장 때문일 것이다. 아베노믹스도 한몫 거들었다. 그러나 저성장은 경기 침체 때문에 온 것은 아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제공하는 지속가능성장의 지표인 총요소생산성 증가율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추락하는 추세를 보인다. 결국 생산성 정체가 저성장의 핵심 요인인 것이다.
총요소생산성은 수출경쟁력의 지표이기도 하다. 지난주 역대 최단 기간에 연간 무역액 1조 달러가 달성됐다는 보도가 있었다. 그러나 한편 한국무역협회 산하 국제무역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수출 호황은 해외 수입 수요가 증가했기 때문이며 ‘수출경쟁력’ 변수는 수출의 감소 요인으로 작용했다. 수출산업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신조어 ‘한국판 러스트벨트’를 수출 불황에 따른 일시적인 현상으로 보기는 어렵다. 내년 성장 랠리가 종료된다면 러스트벨트는 더 확대될 우려가 있다.
오랫동안 우리 경제가 길들여져 온 저금리 시대는 막대한 규모의 가계부채와 정체된 생산성을 남기고 종료되었다. 막이 오른 금리 정상화 시대에 당면한 도전은 단지 외환 금융시장의 안정만이 아니다. 두 유산을 제대로 관리해 경제가 침체되는 것을 막는 것이다. 일시적인 경기 침체가 아닌 구조적인 문제에서 비롯한 경제 침체를 막는 것은 쉽지 않다. 가계부문의 재무건전성을 회복하는 데 많은 시간이 소요되며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제도적 뒷받침과 함께 무엇보다도 사회 구성원의 컨센서스(합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 이를 방치한다면 조만간 암울한 경제성적표를 받을 수밖에 없다.
김경수 성균관대 경제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