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희진 산업2부 기자
지난주 발표한 대규모 투자계획에서도 롯데는 화학부문을 강조했다. 그룹 차원에서 5년간 투자할 총 50조 원 가운데 40%인 20조 원을 화학 및 건설부문에 투자한다고 밝혔다. 롯데제과로 출발한 롯데그룹이 식품과 유통 위주의 내수 기업에서 벗어나 화학과 이커머스를 주력으로 하는 글로벌 기업으로 거듭나겠다는 의지를 밝힌 셈이다.
이는 식품을 통해 기업을 일군 아버지 신격호 총괄회장과는 다른 길을 걷겠다는 신동빈 회장의 의지이기도 하다. 신 회장이 경영수업을 받던 곳은 당시 잘나가던 롯데쇼핑이 아니었다. 연매출 1조 원이 되지 않던 호남석유화학이었다. 그는 이후 2004년 호남석유화학 공동 대표이사가 되면서 적극적인 인수합병을 통해 화학부문의 덩치를 키워 나갔다.
광고 로드중
경영학에서는 ‘불타는 갑판’이라는 용어가 종종 쓰인다. 1988년 영국 북해 유전에서 석유시추선이 폭발했을 때 배 위에 있던 사람들은 불타는 갑판에서 타서 죽느냐, 바다에 뛰어내려 상어의 먹이가 되느냐를 선택해야 했다. 결국 바다로 뛰어든 사람들만 모두 생존했다. 이후로 불타는 갑판은 절체절명의 위기상황에서 새로운 변화와 혁신을 추구하는 기업을 상징하는 말이 됐다.
롯데의 지난 3년은 참담했다는 표현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악재의 연속이었다. 제2롯데월드몰의 수족관 사고, 경영권 분쟁, 경영비리에 대한 검찰 수사, 신 회장 수감으로 점철됐다. 여기에 사드(THAAD) 보복이라는 외풍으로 롯데는 대부분의 중국 사업을 철수했다. 게다가 계열사들의 갑질 의혹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롯데에 이러한 위기들이 닥치지 않았더라면 재계 5위인 롯데가 지금처럼 절박하게 변하려 했을까.
아직 재판이 남아있지만 이제야 경영으로 복귀한 신 회장은 자신의 능력뿐만 아니라 변화의 모습을 제대로 보여줄 때가 왔다. 그런 의미에서 롯데엔 위기에 처한 지금이 기업 혁신을 위한 가장 훌륭한 타이밍일지 모른다.
염희진 산업2부 기자 salth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