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市의 근대화 과정
‘파리의 오스만화’ 시기에 건설된 이탈리안 대로.
○ 파리의 오스만화로 근대 도시로 발전
전형적인 오스만 시대의 건물.
나폴레옹 3세는 1853년에 파리의 재정비 사업의 책임자로 오스만(1809∼1891)을 임명합니다. 오스만이 파리 시장(1853∼1870)으로 재임하는 17년 동안 파리는 완전히 근대적인 도시로 변화합니다.
개선문 부근의 파리대로와 건물 모습.
이러한 원칙으로 파리에는 방사형 도로망과 아브뉘, 불르바르와 같은 대로가 만들어지고 대로의 아래에 하수도 시설이 만들어졌습니다. 약 7만5000동의 건물이 새로 지어졌습니다. 건물들 사이로 여의도 면적의 두 배가 넘는 대형 도심 숲과 28개의 중소규모 녹지도 조성되었습니다. 이후 사람들은 파리가 근대적인 도시로 변화하는 과정을 ‘파리의 오스만화’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물론 비판도 존재합니다. 파리 재정비 사업에 국가 재정이 과도하게 투자된 점과 개발의 이익이 부르주아 계층에게 독점되었다는 것입니다. 도시에서는 가난한 노동자들이 추방되고 땅과 집이 삶의 공간에서 상품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 도시재생사업으로 지금도 변하는 파리
프란츠 사버 빈터할터가 그린 나폴레옹 3세(왼쪽)와 니컬러스에드워드 가베가 그린 오스만 남작의 초상화. 나폴레옹 3세는 산업혁명과 근대적 자본주의 경제 체제 확립, 파리 도시 재정비, 해외 식민지 팽창에 열을 올리면서 제국의 번영을 추구하였다. 오스만 남작은 나폴레옹 3세의 후원 아래 파리를 근대적인 도시로 발전시켰다.
사람들이 걷는 길 위에 식탁과 의자를 설치하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그 유명한 ‘테라스 카페’입니다. 테라스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신문을 읽는 도시인의 일상이 탄생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 후 지식인과 예술인들이 몰려들어 파리는 문화와 예술의 도시로 재탄생합니다.
건물들이 어떤 모습이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파리의 건물은 우선 군집을 이뤄 블록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폭이 좁은 건물들이 수십 채 모여 하나의 블록을 형성하고, 중간 중간에 크고 작은 중정(작은 뜰)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건물들의 1층은 상점, 공방, 우체국, 유치원 등의 공공시설로 채워집니다. 2층은 1층 상점의 창고나 상점 주인의 주거 공간으로, 3, 4층은 부르주아 계급의 주택으로, 5, 6층은 중산층과 노동자들의 거주지로 사용됩니다. 한 건물 안에 다양한 계층이 공존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건물의 모습은 규격화되어 있었습니다. 건물의 전체 높이와 층별 높이를 제한하고, 지붕의 모양도 통일했습니다. 철제 난간과 창문의 크기, 사용하는 석재의 모양과 색 등도 규격화했습니다. 그 결과 건물들이 길의 시작부터 끝까지 모두 연결되어 보이는 효과가 나타났습니다. ‘파리의 오스만화’ 이후 세계의 많은 도시들이 파리의 도시 재정비 사업을 따라갑니다.
파리는 현재도 계속 변화하고 있습니다. 1970년대부터 도시재생사업을 활발히 펼치고 있습니다. 폐쇄된 기차역을 미술관으로, 도축장을 공연장과 과학관으로 만드는 사업 등이 대표적입니다. 여러분도 파리의 도시재생사업에 대해 더 알아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다보면 서울, 부산과 같은 대도시를 어떻게 개발해야 하는가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