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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엄사법 이후 연명의료 중단 2만명… 3분의 1은 본인선택

입력 | 2018-10-10 03:00:00

2월 시행후 임종문화 변화 기류
사전의향서로 치료중단도 154명… 가족 결정땐 전원 동의 필요
복지부 “범위 축소 법개정 추진”, 호스피스 병상 확대도 시급




70대 A 씨는 1월 폐암에 걸린 것을 알았다. 이미 병세가 많이 진행돼 치료가 어려운 상태였다. 평소 ‘웰다잉(Well-Dying)’을 생각해온 그는 4월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해 등록했다. 2월부터 시행된 존엄사법(연명의료결정법)에 따라 자신이 회복 불가능한 상태에 빠졌을 때 연명의료를 받지 않겠다는 것이다. 5월 요양병원에 입원한 그는 폐렴이 악화돼 의식을 잃은 후 자신의 의사와 달리 사망할 때까지 3주간 인공호흡기를 달고 연명의료를 받아야 했다. 그가 입원했던 요양병원에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확인할 수 있는 ‘연명의료 정보 처리시스템’이 설치돼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2월 존엄사법 시행 후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중단하기로 한 환자가 2만 명이 넘었다. 억지로 목숨을 유지하기보다 존엄하게 일생을 마치는 방향으로 임종문화가 바뀌고 있다. 하지만 이를 뒷받침할 인프라는 여전히 부족하고 제도도 지나치게 복잡하다는 지적이다.

○ 한국사회도 ‘웰다잉’ 문화 정착 중

9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연명의료결정법 시행 후 이달 3일까지 8개월간 말기암 등으로 회복할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해 연명의료를 유보하거나 중단한 환자는 2만742명에 달했다. 연명의료란 치료 목적보다는 생명 연장을 위해 시도하는 심폐소생술, 인공호흡기, 혈액투석, 항암제 투여를 뜻한다.

연명의료 중단은 환자 본인보다는 가족의 뜻에 따라 이뤄지는 경우가 많았다. 환자 개인이 연명의료계획서를 써서 연명의료를 중단한 경우는 6836명(33.0%)이었다. 계획서는 병원에서 의사가 사망이 임박한 환자를 대상으로 작성하는 것으로 환자가 담당 의사에게 연명의료를 받지 않거나 중단하겠다는 의사를 밝히면 된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로 연명의료를 중단한 경우는 154명(0.7%)이었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자신이 병에 걸려 회복 불가능한 상태에 빠졌을 때 연명의료를 받지 않겠다고 미리 선언하는 서류다.

연명의료계획서나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쓰지 못한 채 의식을 잃어 환자의 생각을 알 수 없게 돼 환자 가족 합의로 연명의료를 중단한 경우는 1만3752명(66.3%)으로 나타났다.

○ 현장에서는 “여전히 장벽 많다” 호소

의료 현장에서는 복잡한 제도부터 간소화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가족 동의로 연명의료를 중단할 때 미성년을 제외한 환자 가족 전원(배우자 및 직계 존·비속)의 합의가 필요하다. 고령자의 경우 자녀, 손자 등 십수 명의 동의를 얻어야 하는 셈이다. 복지부는 “동의를 얻어야 하는 가족 범위를 좀 더 줄이는 방향으로 법개정을 추진 중”이라고 설명했다.

서울대병원 윤리위원장인 허대석 교수는 “연명의료계획서나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A4 용지 한 장 정도에 체크리스트 형식으로 돼야 하는데 현재는 4, 5장을 써야 하고 전산등록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인프라 보강도 절실하다. 환자가 사전연명의료의향서나 연명의료계획서를 썼더라도 실제 연명의료를 받지 않으려면 의료기관윤리위원회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상급종합병원 42곳 모두 윤리위가 설치됐지만 종합병원 302곳 중 89곳(29.5%), 병원급 1467곳 중 9곳(0.6%), 요양병원 1526곳 중 22곳(1.4%)에만 윤리위가 있다. 윤리위가 없는 병원은 ‘연명의료 정보 처리시스템’도 없어 환자의 연명의료 중단 의사를 확인할 수가 없다. 연명의료계획서 작성도 윤리위가 설치된 병원에서만 가능하다.

연명의료 중단을 선택했어도 실제 ‘웰다잉’하기는 어렵다. 임종 환자의 고통을 덜어줄 호스피스 병상이 2017년 기준 전국 81개 기관 1321개에 불과하다. 전체 말기 암 환자의 10% 정도만 이용할 수 있는 병상 수다.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