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범석 도쿄 특파원
그런데 선거 직후, 아베 총리 진영 측이 발칵 뒤집혔다. 사연은 이랬다. 총재선거 개표 결과 몇 시간 전, 아베 총리 진영은 도쿄의 한 호텔에서 출정식을 열고 지지를 밝힌 국회의원들을 불러 함께 돈가스 카레를 먹었다.
일본에서는 중요한 경기를 앞두고 돈가스나 가쓰돈 등을 먹는 것이 일종의 풍습처럼 여겨지고 있다. ‘이기다’라는 뜻의 단어 ‘가쓰(かつ·勝つ)’와 같은 발음이 음식 이름에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이날 모인 자민당 의원은 총 333명이었다.
충성심 높은 아베 총리 측 몇몇 의원은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비겁한 의원은 누굴까?” “당당하면 나타나라”라며 공개적으로 대상자 수색에 앞장섰다. 아사히신문, 마이니치신문 등 일본 언론도 “4명의 신원 파악 작업이 자민당 내부 물밑에서 진행 중”이라는 보도를 냈다.
아베 캠프의 선거 사무총장을 맡았던 아마리 아키라 전 경제재생상은 “(돈가스 카레) 사건이 있었지만 대승을 거두었다”며 겉으로는 신경 쓰지 않는다는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자민당 내부에서는 “벌써부터 ‘구심력’이 떨어진 것 아니냐”며 이번 돈가스 카레 먹튀 사건을 단순한 해프닝으로 보지 않는 분위기가 나타나고 있다.
이는 선거 결과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아베 총리 진영은 선거 전 당원 지지를 70%까지 올리는 걸 목표로 했으나 55%인 224표를 얻는 데 그쳤다. 총 득표 수 200표를 넘기기 힘들 것이라던 이시바 전 간사장이 254표를 얻으며 선전하자 ‘완벽한 승리’를 꿈꿨던 아베 총리로서는 ‘찝찝한’ 결과를 받은 것이다.
지지자 이탈이 신경 쓰이는 이유는 정책에 제동이 걸리기 때문이다. 헌법 개정안을 통과시키려면 중의원과 참의원 등 양원에서 의원의 3분의 2 이상(중의원 310명, 참의원 162명)이 필요한데, 자민당은 현재 중의원 283명, 참의원 122명이어서 단독으로는 이를 추진할 수 없는 상황이다. 연립여당인 공명당 등의 도움을 받아도 빠듯하다.
아베 총리는 당선 당시 “확실한 토대 위에 가능한 한 폭넓은 인재를 등용하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확실한 토대’가 불안해진 지금은 “(나를) 지지하지 않으면 아웃”이라는 메시지를 보내는 듯하다. ‘돈가스 카레 먹튀’ 의원 4명보다 더 불안해하고 있는 사람은 어쩌면 아베 총리 자신일지 모른다.
김범석 도쿄 특파원 bsis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