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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덕 칼럼]헌법재판소까지 ‘코드인사’…촛불잔치는 끝났다

입력 | 2018-09-10 03:00:00

박근혜 탄핵 당시 헌법재판소, 편향된 인사였다면 신뢰했을까
‘非자유주의적 민주주의’ 헝가리, 헌재에 측근 심어 독재로 가는데…




김순덕 논설주간

돌부처도 돌아앉게 만드는 게 시앗(남편의 첩)이라면 민심을 돌아앉히는 건 측근 비리와 인사다. 노무현 정부는 코드인사로, 이명박 정부는 고소영(고려대·소망교회·영남) 강부자(강남 부동산 자산가) 인사로 취임 반년 만에 지지율 20%대로 주저앉았다. 박근혜 정부의 불통인사는 언급하고 싶지도 않다.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겠다던 문재인 정부의 인사 역시 좋은 소리 듣기 어렵다. 5대 인사 배제 원칙(병역면탈, 부동산투기, 세금탈루, 위장전입, 논문표절)도 못 지키더니 작년 11월 음주운전, 성범죄를 덧붙이며 내용은 대폭 완화한 7대 원칙을 내놨으면 이번 개각에선 딱 지켜야 신뢰가 생기는 법이다.

그런데도 2007년과 2010년, 그러니까 인사청문 제도가 장관급까지 확대된 2005년 7월 이후 장남과 위장전입했던 이은애 헌법재판소 재판관 후보자가 11일 인사청문회장에 나온다. 오늘 인사청문을 받는 이석태 후보자는 2015∼2016년 세월호참사특별조사위원장 때 변호사 겸직 금지 조항을 위반하고도 거짓 해명까지 했다.

더 심각한 건 헌법재판소의 독립성 문제다. 1983년 제1차 사법권 독립 세계대회에서 법관들이 만장일치로 외친 사법권 독립 기준이 ‘입법부와 행정부로부터의 독립’이었다. 이석태는 노무현 정부 당시 민정수석인 문 대통령 밑에서 공직기강비서관으로 일한 전력이 있어 정치적 중립성에서 자유롭지 않다. 대법원장이 자기 몫 추천으로 이석태를 올리고, 더불어민주당에서 대법원장 최측근인 김기영 후보자를 추천한 건 그들도 켕긴다는 뜻일 게다.

양승태 전임 대법원장의 ‘재판 거래’ 의혹이 탈탈 털리는 모습을 빤히 보면서 김명수 대법원장이 ‘인사 거래’ 의혹을 일으킬 사태에 앞장섰을 것 같진 않다. 통상 대통령이 동향 출신 대법원장을 택하지 않는데(전두환 전 대통령의 예외는 있다) 문 대통령은 작년 8월 같은 PK(부산경남) 출신 김 대법원장을 지명해 관행을 깼다. 그러고는 이번에 헌재소장으로 우리법연구회 출신 유남석 재판관을 앉혀 이곳 회장이던 김 대법원장과 함께 두 최고 사법기관을 같은 진보집단 출신이 지배하게끔 혁명적 구도를 만들었다. 삼권분립이 울고 갈 삼선짬뽕이다.

자유민주주의의 가치를 훼손시킨 ‘비(非)자유주의적 민주주의’ 국가로 유럽연합(EU)에서 헝가리가 지탄받는 큰 이유도 헌재의 독립성을 흔들었다는 데 있다. 거대 집권당의 독주를 방지할 수 있는 유일한 법적 장치가 헌재다. 집권 세력은 15명 헌재 재판관 중 5명을 총리 보좌관, 2명은 여당의원 출신 등 충성분자에서 임명해 헌재를 무력화하고 ‘소프트 독재’에 들어섰다.

그래도 이 나라는 2011년 말 헌재 및 사법부 기능과 기본권을 축소하는 개헌을 거쳐 측근인사를 했지 우리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코드인사를 하진 않았다. 1998년부터 4년간, 그리고 2010년부터 올해 4월 총선까지 내리 압승한 극우 집권당의 오르반 빅토르 총리는 공산 헝가리 시절 민주화운동에 앞장섰던, 우리로 치면 586운동권이다. 1989년 6월 부다페스트 영웅광장, 소련군에 체포돼 처형당한 헝가리혁명(1956년) 당시 총리 너지 임레의 뒤늦은 국장(國葬)에서 자유선거와 소련군 철수를 촉구한 젊은 시절 그의 연설 동영상을 보면, 민주화 투사도 독재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에 소름이 돋는다.

뉴욕타임스는 그 세대의 정치인들에게 민주주의란 숙달하기 어려운 작업이라고 했다. 유럽을 휩쓴 글로벌 금융위기와 이슬람 난민 사태도 오르반의 변신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그러나 일국의 지도자가 민족감정과 편 가르기를 자극하고, 비판언론을 옥죄어 국민의 눈과 귀를 막고, 시민단체에 돈을 뿌려 선거용병으로 이용하고, EU 지원금으로 공공 일자리는 만들지만 최저임금이 상대적으로 높아 저숙련 노동 수요를 저하시킨다는 외신과 논문을 보면 남의 나라 일 같지가 않다.

오늘 헌재 인사청문회는 그래서 중요하다.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지켜주는 최후의 보루가 사법제도다. 현 정부가 입만 열면 강조하는 ‘촛불혁명’은 박근혜 하야 아닌 탄핵으로 헌재 결정에 따라 마무리됐고, 문 대통령은 41%의 득표율로 당선됐다. 이제 대통령 지지율 49%(갤럽 조사), 당선 당시에 근접했음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거품은 꺼졌고 촛불잔치는 끝났다. 우리나라가 ‘아시아의 헝가리’가 되지 않으려면 헌재와 사법부의 독립성만은 누구도 건드리지 말아야 한다.
 
김순덕 논설주간 yu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