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영 채널A 심의실장
휠체어와 지하철을 섭외하고 기자들에게 동선을 공개하는 이벤트로 장애인이 겪는 불편함을 절감할 수 있을까. 기약 없이 기다려야 하는 장애인 콜택시, “리프트가 고장 났다”며 장애인을 지나치는 저상버스, “당신 하나 때문에 연착됐다”는 눈총을 주는 지하철을 체험할 수 있을까.
장애인의 나들이 체험담은 이미 차고 넘친다. 어느 1급 장애인 부부는 휠체어를 타고 유럽 여행을 다녀와 책을 냈다(‘낯선 여행, 떠날 자유’). 한강 유람선도, 남산타워도, 경복궁도 엄두를 못 냈던 부부는 파리에서 바토무슈를 타고, 에펠탑을 구경하고, 베르사유 궁전을 관광했다. 장애인용 대중교통이 훌륭해서가 아니다. 일반 택시나 버스를 휠체어로 이용하는 데 아무런 불편이 없었던 덕분이다. 서울도 이런 걸 몰라서 못하는 게 아니다. 시장이 체감하지 못해서는 더더욱 아니다. 우선순위에서 뒤로 밀어둔 것뿐이다.
박 시장은 최근 방송에 나와 “시장 반응을 몰랐다는 점은 쿨하게 인정하겠다”고 했다. 통개발 선언→옥탑방 체험→또 개발 발표라는 엉뚱한 조합의 시나리오도 황당하지만 대형 개발 계획을 공표하면서 시장 반응도 예상하지 못했다니, 그건 쿨하게 인정할 게 아니라 부끄럽게 사과하고 책임져야 할 일이다. 한 수 앞도 내다보지 못한 정책 발표 탓에 정작 중요한 노후지역과 강북 개발의 필요성에 대한 논의는 쑥 들어가 버렸다. 13일로 예정됐던 시정운영 4개년 계획 발표도 연기됐다. 집값 잡는다고 수요 억제에서 공급 확대로 선회한 정부와 여당이 서울의 그린벨트 해제를 압박해도 큰소리를 못 내는 처지다.
서울시장을 두 번 지낸 고건 전 총리는 행정을 하려면 최소한 세 수를 내다봐야 한다고 했다. 정책의 부작용이 뭐가 있을까, 그게 첫 수다. 부작용에 대한 해소책은 무엇일까, 그것이 두 번째 수. 마지막으로 해소책이 효과가 있을까, 바로 세 번째 수다. 박 시장은 ‘체험 위시리스트’를 버리고 옥탑방 정치의 실패를 복기한 후 인스타그램용 ‘그림’이 안 나오더라도 최소한 세 수를 내다보는 행정에 집중해주기 바란다. 시장은 체험하는 자리가 아니라 책임지는 자리다.
이진영 채널A 심의실장 eco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