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초구 지원 공동육아모임 가보니
지난달 31일 서울 서초구 공동육아 모임 ‘ABC클럽’ 아빠 엄마들이 양재동의 한 가정에서 아이들과 함께 만든 과일꼬치를 들어 보이고 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모임이 시작되자 아이들은 하나같이 아빠 무릎에 앉았다. 서로 안부를 묻는 영어 노래를 틀자 박정제 씨(41)가 목청 높여 따라 불렀다. 그의 딸 규리 양(4)은 그런 아빠가 좋은 듯 아빠를 빤히 쳐다보다가 웃으며 목에 매달리기를 반복했다. 이날 모임에서는 각자 좋아하는 과일을 묻고 답하며 과일꼬치를 만들었다. 또 채소 이름을 배우고 그 재료들로 주먹밥을 만들고 나눠 먹었다.
서초구가 지원하는 공동육아 모임은 현재 101개다. 그중 ABC클럽처럼 아빠들이 참여하는 공동육아 모임은 18개다. 지난해는 1곳뿐이었는데 올해 크게 늘었다. 서초구는 아빠들의 참여를 유도하고자 모임 때마다 참여 가구당 1만 원씩 주는 지원금을 아빠가 참여하면 2만 원으로 늘렸다.
아빠와 함께 여러 친구와 노는 횟수가 늘어나자 아이들은 형제자매처럼 어울리게 됐다. 모임 리더를 맡고 있는 정유진 씨는 “또래 친구뿐만 아니라 자주 보는 아빠들이 늘면서 아이들의 사교성이 커진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한자리에 모인 아이들은 자신의 아빠뿐만 아니라 다른 아빠들에게도 스스럼없이 안겼다.
모임에 참석하면서 아빠들의 일상은 달라졌다. 모임은 주로 금요일 저녁에 이뤄진다. 과거에는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이 아니었다. 자녀 2명과 함께 모임에 오는 박승현 씨(32)는 “예전에는 금요일 저녁에 주로 회식을 했다. 이제는 다른 회사 동료들도 육아 모임에 대해 관심 있게 물어본다”고 말했다. 네 가족 중 가장 많은 아이 3명을 키우는 이재상 씨(37)는 “공동육아를 통해 육아 부담도 나눠 지고 과거엔 몰랐던 아이 키우는 즐거움도 배우고 있다”며 웃었다.
남편과 아이들이 느끼는 즐거움이 커진 만큼 엄마들은 행복해졌다. ABC클럽 엄마들은 과거에는 혼자 짊어져야 했던 육아 스트레스가 크게 줄었다고 입을 모았다. 육아에 지쳐 잃어가던 아이 키우는 즐거움을 되찾은 것이다. 둘째 아이를 갖겠다는 큰 결심을 한 엄마도 있다. 박정제 씨의 동갑내기 부인 박지윤 씨는 “그동안 둘째는 생각 안 하고 살았는데 남편이 적극적으로 육아에 참여하는 것을 보고 둘째를 낳아도 힘들지 않고 행복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이와 친해진 남편을 보며 남편이 ‘다시’ 고맙고 좋아졌다”고 했다. 다시 내가 고마워졌다니. 남편들의 귀가 번쩍 뜨일 말이었다.
한우신 기자 hanwsh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