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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갑식의 뫔길]중벼슬, 닭벼슬보다 못하다는데…

입력 | 2018-08-16 03:00:00


지난해 10월 제35대 총무원장 선거에서 당선된 직후 설정 스님(오른쪽)과 33, 34대 총무원장 자승 스님. 불교신문 제공

김갑식 문화부 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한국 사회는 드물게 종교의 공존이 이뤄지는 나라다. 갈등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 정도가 심하지는 않다. 그렇지만 정치 이슈에 못지않게 종교 화제도 조심스럽다. 최근 지인들의 모임에서 종교담당 기자가 있어서 그런지 모처럼 종교 얘기가 넘쳤다. 궁금한 대목에 대한 질문도 있었지만 대부분 “절 또는 교회에 다닌다고 말하는 게 꺼려진다”는 하소연이었다. 올해 2월 천주교 신부의 성추행 사건이 불거졌을 때는 가톨릭 신자들이 그랬다.

신자나 신도들이 자랑으로 여겨야 할 종교인의 권위가 땅에 떨어지고, 일부 교단은 세상의 조롱거리가 됐다. “목회자가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거지” “다른 것 신경 쓰지 말고 부처님 법대로 살면 돼”라고 작정해도 마음이 편하지 않다는 게 지인들의 말이다.

한국 불교를 대표하는 대한불교조계종의 최근 사태는 한마디로 ‘승난(僧難)’이다. 조계종은 1980년 신군부에 의해 종단이 유린된 사태를 법난(法難)이라고 부른다. 현 사태의 후유증은 법난 이상일 수 있다는 게 불교 바닥의 민심이다.

은처자(隱妻子·숨겨 놓은 아내와 자녀) 시비에 휩싸인 설정 총무원장은 16일 중앙종회(조계종의 국회) 이전에 용퇴하겠다고 했음에도 개혁을 이유로 연말 퇴진을 13일 발표했다. 대신 작심한 듯 발표한 입장문에서 “진실 여부를 떠나 종단의 안정을 위해 스스로 사퇴하고자 했으나, 종단 내부의 뿌리 깊은 기득권 세력에 의해 은밀하고도 조직적으로 조정되는 상황을 목도하면서 사퇴만이 종단을 위한 길이 아님을 깨닫게 됐다”라고 밝혔다.

여기서 지목된 기득권 세력은 자승 전 총무원장을 겨냥한 것이다. 그러자 자승 전 원장이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중앙종회와 본사주지협의회는 한목소리로 설정 원장의 조속한 퇴진을 요구했다.

양측은 지난해 제35대 총무원장 선거에서 종권 재창출을 위해 한배를 탔다. 종회 내에 불교광장이라는 막강한 계파(종책) 모임에도 간판스타가 마땅치 않았던 자승 전 원장과 당시만 해도 선승(禪僧)의 좋은 이미지는 있지만 힘이 부족했던 설정 스님 측의 결합이었다. 선거 결과는 압도적 승리였다. 하지만 설정 원장의 개인적 흠결이 불씨가 돼 배를 태울 기세가 되자 상황이 180도 바뀌었다. 이제는 홀로 살겠다며 상대방을 배에서 밀어내고, 또 밀려나지 않으려고 버티는 형국이다.

지난달 27일 첫 퇴진 시사 발언 이후 질서 있는 퇴진으로 가닥이 잡히던 양측 관계가 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됐을까? 무엇보다 자승 전 원장 측이 명예로운 퇴진을 위해 시간을 필요로 하는 설정 원장 측의 입장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는 분석이다. 설조 스님의 단식을 계기로 결집한 개혁 그룹이 중앙종회 해산 요구에 이어 전국승려대회 개최까지 예고하자 설정 원장의 빠른 퇴진이 불가피해졌다는 것이다. 향후 조계종 사태는 중앙종회의 설정 원장에 대한 불신임안 처리 여부와 23일 승려대회의 성패가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전·현직 총무원장은 여러 허언(虛言)으로 종단과 신도들을 곤혹스럽게 만들어 왔다. 설정 원장은 퇴진과 관련한 약속을 손바닥 뒤집듯 번복했고, 자승 전 원장은 재임 시절 “백의종군하겠다” “계파를 해체하겠다”, 퇴임 이후 무문관 수행 뒤에는 “은퇴 이후를 생각했는데 그것마저도 부질없더라”라고 했다.

한편 개신교계를 뜨겁게 달군 것은 명성교회에 대한 예수교장로회 통합 총회 재판국의 판결이다. 재판국은 최근 김삼환 원로목사의 아들인 김하나 목사 청빙 결의에 문제가 없다고 결정했다. 이 교회는 등록 신자가 10만 명을 넘는 교단 내 최대 교회 중 하나다. 앞서 통합 교단은 2013년 세습 금지법을 만들었고, 김 원로목사는 재임 중 세습하지 않는다는 말을 여러 차례 약속했다. 급기야 같은 교단의 소망교회 김지철 목사는 김 원로목사에게 공개편지를 보내 “한국 교회와 총회, 젊은 후배 목회자를 위해 통합 총회를 떠나 달라”며 결단을 촉구했다.

최근 일부 종교 지도자의 행태는 모범이 되기는커녕 사회의 눈높이 아래에 있다. 종단 또는 교회의 다수가 원한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이는 특정인의 카리스마에 의지한 나머지 종교 공동체 내부에 민주적 관계가 정립되지 못했다는 것을 보여줄 뿐이다. 종교 지도자들이 자신들의 약속만 지켜도 좋겠다. “○○교회, △△절에 다닌다”고 편하게 말할 수 있도록.

“중 벼슬, 닭벼슬(닭볏)보다 못하다.” “천국에서 하나님 만났을 때 큰 교회 목회했냐고 묻지 않으신다.” 종교인을 만났을 때 귀에 들어와 쏙 박히던 촌철살인이다.

김갑식 문화부 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dunanwor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