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영아 도쿄 특파원
요즘 한국 사회 분위기를 뒤숭숭하게 만든 ‘최저임금 인상’만 해도 그렇다. 일본의 최저임금은 2015년 아베 신조 총리가 시간당 1000엔까지 올리겠다고 공약한 뒤 3년 연속 연 3%씩 오르고 있다. 결정 과정은 신중하다. 먼저 7월경 정부 중앙최저임금심의회가 전국 도도부현(광역자치단체)별 인상액 기준안을 제시한다. 이어 이의신청 기간을 거친 뒤 지방자치단체별 자체 심사위원회가 자기 지역의 노동자 생계비용, 업체의 임금 지급 능력 등을 감안해 최종 결정한다.
올해 정부 심의회 최종회의는 전국 평균 25엔(2.9%)을 올리느냐, 26엔(3.1%)을 올리느냐를 놓고 10시간 넘게 격론을 거쳤다. 그렇게 해서 “역대 최대 규모”라며 내놓은 액수가 시간당 26엔 오른 874엔(약 8888원)이다. 흥미로운 것은 10일 각 자치단체가 정한 최저임금액의 뚜껑을 열어보니 47개 도도부현 중 23개가 정부 기준보다 1∼2엔 더 올린 액수를 내놓았다는 점이다. 주로 인구 유출을 우려하는 지역들이 이런 결정을 했다.
일본 정부가 시간외근무 상한 위반에 대해 벌칙을 법제화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만큼 정부의 의지가 강하다. 하지만 현장에 여지는 남겨둔다. 시간외근무는 월 45시간, 연간 360시간이 상한이지만 성수기 등에는 노사 합의가 있으면 연 720시간까지 늘릴 수 있게 했다. 연 수입 1080만 엔(약 1억980만 원) 이상 고도(高度) 전문가의 경우 시간을 따지지 않고 알아서 근무하는 재량근무제도 도입했다.
이처럼 신중에 신중을 기하는 일본의 ‘일하는 방식 개혁’을 지켜보다 한국으로 고개를 돌려보면 그 과감함에 숨이 탁 멎는다. 이미 시행에 들어간 주 52시간 근로제, 2년 만에 29.1%가 인상되는 최저임금은 사회에 다양한 충격을 안겨주고 있다. 현장에선 아우성이 터져 나온다. 아무리 취지가 좋다 해도 그 첫발을 너무 급히, 너무 크게 내디뎠기 때문 아닐까. 연금개혁 관련 국민 반발 분위기도 심상치 않다.
경제건 사회건 다양한 이해관계가 유기적으로 얽혀 스스로 균형점을 찾는 생태계와 같다. 정부 정책이 특정 방향에만 집착해 그 생태계를 혼란에 빠뜨려선 안 된다. 어렵더라도 이해 당사자들을 설득하며 생태계의 선순환을 유지·발전시키는 방도를 찾아야 한다. 그러려면 때에 따라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도 필요하다. ‘극우’라는 아베 총리조차 오른쪽으로만 가지는 않는다.
서영아 도쿄 특파원 sy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