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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광장/차진아]선거제도 개혁의 성공조건

입력 | 2018-08-10 03:00:00

국회의원 모두 이해당사자여서 헌법 개정보다 더 어렵다
내 정당에 유리한지 따지지 말라
민주성, 책임성, 구성의 효율성 등 개혁의 목표에 충실해야 성공




차진아 객원논설위원·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선거를 민주주의의 축제, 꽃이라 부른다. 그러나 우리가 경험한 선거 중에 축제처럼 흥겹고 꽃처럼 아름다웠던 선거가 몇 번이나 있었나? 지난 70년간 수많은 선거를 치렀지만 선거를 둘러싼 갈등과 대립은 축제가 아닌 투쟁이었고, 그 이면의 불법과 부정은 꽃이 아닌 진흙탕이었다.

갈등과 대립도 의미가 있을 수 있고 진흙탕 속에서 꽃이 필 수도 있다. 하지만 불법, 부정선거가 민주주의에 얼마나 치명적인지는 ‘3·15 부정선거’ 이후 국민 모두가 알고 있다. 그럼에도 선거 때마다 불법과 부정을 우려하는 것은 선거제도가 안고 있는 근본적 문제 때문이다.

흔히 제도가 문제가 아니라 사람이 문제라고 한다. 그러나 모든 사람에게 성인군자가 되라고 요구할 수는 없다. 민주국가에서 법적 제도와 절차를 통한 법치를 강조하는 것도 인간의 약점을 솔직하게 인정하기 때문이다. 고위 공직자의 도덕성에 모든 것을 맡기기보다는 권한의 오·남용을 법적으로 통제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다. 그렇다고 사람의 중요성을 무시하자는 말은 아니다. 다만 사람의 문제와 제도의 문제를 동시에 봐야지 어느 한쪽만 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선거제도 역시 마찬가지다. 공직선거 후보자와 이들을 공천한 정당의 선의를 믿는 것도 좋지만, 제도 자체를 불법과 부정의 여지가 최소화하도록 합리적으로 구성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최근 선거제도 개혁이 필요하다는 데 대한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다. 여야 모두 선거제도 개혁의 필요성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원칙론적 합의가 구체적 내용에 대한 실질적 공감대 형성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그동안 수많은 정치개혁 입법이 있었고 그 과정에서 나름의 성과도 있었지만 가장 예민하고 해결하기 어려운 과제가 선거제도 개혁이었다. 오죽하면 헌법 개정보다 선거법 개정이 더 어렵다고 했을까.

선거제도 개혁이 그처럼 어려운 이유는 이를 주도해야 할 국회의원 스스로가 직접적인 이해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의원들은 선거제도가 민주성과 책임성, 국가기관 구성의 효율성이라는 기본적 목표에 충실한지보다는 자신과 소속 정당에 유리한지를 먼저 따진다. 그 결과 선거제도 개혁이 올바른 방향에서 벗어나는 일이 반복됐다.

이제 선거제도 개혁을 개헌과 연계하자는 주장도 나오고, 특정 정당이 과대 대표 또는 과소 대표되는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한 비례성 강화 요구도 높아지고 있다. 이러한 원칙 자체의 타당성을 부정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제도의 구체적인 내용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이해관계가 충돌할 가능성이 크다. 2016년 4월 총선 직전 선거구 재획정이라는 비교적 분명하고 간단한 사안조차도 헌법재판소가 제시한 개정 시한을 넘겨 선거구 무효라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던 일은 앞으로 있을 선거제도 개혁 논의에 대해서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현 시점에서 선거제도 개혁 요구는 과거의 선거법 개정 논의와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미시적, 부분적 수정이 아니라 제도의 근간 자체를 바꾸는 거시적, 근본적 개혁이 요구되고 있다. 이는 21세기 대한민국 발전을 위한 가장 중요한 기초의 하나이며 이 개혁이 성공할 때만 합리적인 개헌도, 정치권 신뢰 회복도, 정치권 주도의 대한민국 미래 설계도 가능해질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선거제도 개혁은 시대적 소명이다. 선거제도 개혁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세 가지 조건이 갖춰져야 한다.

첫째, 여야 모두 기득권을 포기해야 한다. 현역 국회의원에게 유리하고 그들의 지지 기반이나 강점을 살리는 방향으로 선거제도를 왜곡하려는 시도를 차단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지난 30년간 수없이 반복된 선거법 개정과 다를 바 없게 된다.

둘째, 개혁의 목표와 절차, 수단이 뚜렷하고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개혁의 목표 이외에 이질적인 고려가 개입하거나 중간에 침투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 절차를 투명하게 하고 새로운 선거제도의 구성 요소들이 정말 개혁 목표에 부합하는지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

셋째, 이 모든 과정이 국민 앞에, 국민 의사의 적절한 수렴과 통제하에서 진행돼야 한다. 헌법 개정에 준할 정도로 국민의 정당한 요구가 수렴되고 반영될 때 진정한 민주적 선거제도, 21세기 대한민국의 발전을 견인할 선거제도가 성공적으로 정착될 수 있을 것이다.
 
차진아 객원논설위원·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