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성철 정치부 차장
아마 윤 원장의 태도 변화에는 자신을 임명해준 청와대의 기류 변화가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청와대는 지난달 27일 제2차 규제혁신점검회의를 회의 당일 전격적으로 취소했다. 인터넷전문은행 규제가 주요 안건이었던 회의가 취소된 이유는 “준비가 미흡하다”는 것이었다. 이후 청와대가 은산분리 완화를 규제개혁의 출발점으로 삼을 것이라는 이야기는 정치권과 금융계에서 꾸준히 흘러나왔다.
하지만 그것만이 윤 원장이 마음을 바꾼 이유는 아닐 것이다. 윤 원장은 국회 답변에서 “현 시점에서 은산분리 완화를 통한 인터넷전문은행 활성화가 국가의 중요한 과제라 인식하고 있다”고 말했다. “개인적 생각을 이야기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 말을 아꼈지만, 윤 원장의 발언은 금융감독당국의 수장이 돼보니 학자 때와는 세상이 많이 달라 보이더라는 이야기로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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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초로 인터넷전문은행 영업을 시작한 케이뱅크는 실제로 전체 대출금의 40%가량을 신용등급 4등급(자체 기준) 이하 소상공인 등에게 내줬다. 그러나 최근 3500억 원인 자본금을 5000억 원으로 늘리는 증자에 실패해 마이너스 통장 등 주력 대출 상품 판매를 이달 말까지 중단한 상태다. 케이뱅크의 주요 주주인 KT는 투자 의지도 있고 자금력도 충분하다. 하지만 산업자본은 은행 지분을 최대 10%(의결권 있는 지분은 4%)까지만 가질 수 있도록 한 은산분리에 가로막힌 것이다.
이런 상황을 놔둔 채로는 포용적 성장은 허황된 꿈일 뿐이다. 훌륭한 아이디어와 기술이 있어도 돈이 없어서 창업을 못 해서는 일자리 창출도, 성장과실 공유도 모두 불가능한 얘기다. 은산분리 규제를 풀어준다고 케이뱅크가 당장 KT의 사금고가 되진 않는다. 그런 문제는 윤 원장이 국회에서 밝힌 대로 “잘 감독하는 쪽으로 역량을 집중하고 필요한 조치를 준비”하면 될 일이다.
‘은산분리 완화는 대선 공약 파기’라는 시민단체 방식 사고 틀로는 아무 일도 할 수 없다. 원래 직업이 무엇이었든 국정을 책임지는 자리에 올랐다면 국민 살림살이를 최우선시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본인의 신념이 틀렸다면 언제라도 수정할 수 있는 용기, 그런 태도가 실사구시(實事求是)가 아닐까 한다.
전성철 정치부 차장 daw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