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교에이산업과 코코로 컴퍼니가 지난해 10월 출시해 판매하고 있는 ‘접수원’ 로봇(왼쪽 사진)과 중국 동영상 스트리밍 업체 아이치이의 인공지능(AI) 비서 ‘비비’. 사진 출처 일본 코코로 홈페이지·아이치이
접수원 로봇은 사람과 흡사한 외모와 목소리로 언론에도 종종 소개되고 있다. 하지만 접수원 로봇을 바라보는 시선이 마냥 곱기만 한 것은 아니다. 대부분이 여성형 로봇이기 때문이다. 인공지능(AI) 권위자 아라이 노리코 일본국립정보학연구소 교수는 최근 아사히신문 칼럼을 통해 “접수 일을 하는 사람은 순종적이고 예쁜 젊은 여성이라는 고정관념을 허용하고 편견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나온다”며 “서양에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수준의 성적 편견이 있다”고 비판했다.
최근 세계 첨단기술 업계에서는 도우미 로봇이나 AI 비서의 성 편향이 민감한 이슈로 떠올랐다. 애플의 ‘시리’, 아마존 ‘알렉사’, 마이크로소프트 ‘코타나’ 등 대부분의 AI 비서는 출시 당시 여성의 목소리와 이름을 가졌고 이후에 남성 버전이 추가됐다. 구글은 올 5월 AI 비서 ‘구글 어시스턴트’ 영어 버전에 남성 R&B 가수 존 레전드의 목소리를 추가해 남녀 3명씩 모두 6종의 목소리를 갖췄다. 국내 정보기술(IT) 기업들이 내놓은 AI 비서가 대부분 여성의 목소리를 가진 데 비해 구글 한국어 버전은 현재 남성 목소리로만 지원된다.
업계에서는 도우미 로봇이나 AI 비서에 여성의 외모와 목소리를 입히는 것은 소비자 선호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마이크로소프트 코타나 팀 소속 작가인 데버러 해리슨은 “사전 테스트에서 여성 목소리에 대한 반응이 더 좋았다”고 말했다. 국내 업계도 사정은 비슷하다. AI스피커 ‘기가지니’ 서비스를 하는 KT 관계자는 “귀에 잘 들어오는 목소리를 찾다 보니 여성 목소리가 채택된 것”이라고 했다.
남성 목소리를 가진 AI 비서가 없는 건 아니다. 애플은 다른 영어권 국가와는 달리 영국에서는 남성 목소리를 가진 시리를 내놨다. 저스틴 커셀 미국 카네기멜런대 컴퓨터공학과 교수를 포함한 일부 전문가는 애플이 이 같은 선택을 한 이유가 과거 영국의 남성 하인 문화 때문일 것이라고 봤다. 독일의 자동차회사 BMW가 여성 목소리가 담긴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을 내놓자 남성 운전자들 중 일부는 ‘여성의 지시에 따르기 싫다’는 취지의 불만을 터뜨린 경우도 있다.
로봇이나 AI가 차별의 주체가 되기도 한다. 최근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아마존과 구글 의 AI 스피커 영어 인식률은 말하는 사람의 억양에 따라 차이가 났다. 구글 AI 스피커의 경우 미국 동부 영어 억양 인식률은 91.8%였지만 스페인식 영어 억양 인식률은 79.9%에 그쳤다. 국내 AI 스피커나 음성인식 기술 역시 어린이나 노인의 말투, 사투리에 대한 인식률은 표준어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다. 국내 한 음성인식 연구자는 “초기 표본이 표준어 사용자 중심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인간형 로봇이나 AI 비서의 역할이 확대되면서 사회적 편견을 반영한 기술이 다시 편견과 차별을 강화시킬 것을 우려한다. 이에 따라 AI 개발에 여성을 비롯해 사회적 소수의 참여를 늘려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미국 IT 기업 라이브퍼슨의 최고경영자(CEO) 로버트 로캐시오는 5월 포천 기고문에서 “미국 20대 기술기업 중 18곳의 CEO가 남성이고 페이스북,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엔지니어 5명 중 1명만 여성”이라며 “여성 리더 등 균형 있는 채용을 통해 남성 중심의 편견을 줄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