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한나 사이펨 전 생산공정매니저(왼쪽)와 박혜린 이노마드 대표는 모두 공학을 전공하지 않았지만, 공학과 관련한 산업 분야에서 일해왔다. 이들은 “플랜트와 전기라는 남성 중심 산업의 현장에서도 여성이 지닌 시각과 능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걸스로봇 제공
“‘볼트가 사라졌다’는 직원의 말에 ‘사이즈는? 길이랑 굵기는?’이라고 묻는 순간 주변 분위기가 이상해지는 경험을 했어요. 현장에서는 성적 함축어가 많거든요. 그렇다고 생산 현장이 여성의 장점과 매력을 발휘 못할 곳은 결코 아니에요.”
이탈리아 석유 및 가스 기업 사이펨의 인도네시아 장크릭 프로젝트 임한나 전 생산공정 매니저는 이달 13일 서울 강남구 구글캠퍼스서울에서 열린 ‘신산업 SC, Dive into Diversity(다양성에 빠지다)’ 행사에서 자신의 현장 근무 경험을 소개하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커뮤니케이션 역량 등 여성 특유의 장점을 발휘할 수 있는 곳 역시 생산 현장”이라며 “더 많은 여성이 플랜트 분야에 더 진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 전 매니저는 13년 간 해외 해양 플랜트 엔지니어링 분야에 몸담아왔다. 근무 기간 중 절반이 넘는 8년은 시추선을 만드는 생산 현장에서 일했다.
“도면에는 배를 만들 수 있는 규모, 재료, 배관 및 계기, 전기가 다 나와 있었어요. 어떤 상징도 신기한 세계도 없는 이 산업에 반전 매력을 느꼈죠.”
그는 곧바로 프랑스의 도리스엔지니어링과 노르웨이 아커 솔루션, 이탈리아 사이펨 등 글로벌 석유 및 가스 기업에서 일하게 됐다. 그곳에서 일정 관리부터 생산공정 관리까지 다양한 일을 도맡으며 능력을 키웠고, 매니저와 지사장을 거쳤다. 임 전 매니저는 “여성은 언어 능력이 뛰어나고 커뮤니케이션 기술이 좋아 부서와 부서를 잇는 다리 역할을 잘 하는 등 현장에서도 장기를 발휘할 기회가 많다”고 강조했다. 그는 “플랜트에는 생산 외에 계약, 구매 관리 등 ‘거친 말’을 듣지 않는 자리도 많은 만큼 여성이라고 플랜트 근무를 꺼리지 않았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아이디어와 기술로 창업한 전문가도 있다. 휴대용 발전기를 만드는 에너지 스타트업 이노마드의 박혜린 대표는 인도 소도시를 여행하다 불안정한 전기의 불편함을 깨달았다. 곧바로 에너지를 자유롭게 공급할 수 있는 초소형 발전기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휴대용저장장치(USB메모리) 위주로 전기를 쓰고 태블릿과 스마트폰이 필수인 요즘 라이프스타일을 고려해 들고 다니며 에너지를 만드는 장치를 개발하는 스타트업을 2013년 창업했다. 이노마드라는 사명은 ‘에너지 노마드(유목민)’이라는 뜻이다.
“시작은 힘들었지만 오히려 여성이어서 생각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냈어요. (전기 산업이라는) 남성 중심 산업에서 이런 생각을 한 것은 의미가 있다는 격려도 받았어요. 첫 투자를 받고 사업을 시작할 수 있었죠.”
이날 행사를 주관한 한국플랜트산업협회, 한국신재생에너지협회, 한국의료기기공업협동조합, 한국로봇산업협회는 “산업에 여성 참여를 확대하기 위해 계속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윤신영 동아사이언스 기자 ashill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