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선 이룬 장종태 대전 서구청장, 주경야독으로 박사학위까지 취득 강연 통해 청소년에 희망 심어줘
장종태 대전 서구청장(왼쪽에서 세 번째)이 청년네트워크 발대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그는 젊은이들이 희망을 갖도록 도울 수 있는 기회를 많이 만들어주고 싶다고 말했다. 대전 서구청 제공
50여 년 전 자신의 10대 초반 시절에 대한 장종태 대전 서구청장(65)의 기억이다. “요즘도 기차 탈 일이 있어 대전역에 가다 보면 당시 누님들이 아련히 생각이 나요. 물건을 팔아주려고 손님들에게 내키지 않는 미소까지 지어 보이던….”
장 청장은 지난 지방선거에서 압도적 득표(66.45%)로 재선했다. 2010년 국장으로 서구청을 퇴직한 뒤 청장에 도전해 한 차례 낙선한 뒤 2014년 재도전해 성공했다. 그는 대전충청지역 현직 지방자치단체장 가운데 대표적으로 입지전적인 삶을 살아온 인물이지만 세간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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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10대 시절은 말 그대로 주경야독의 세월이었다. 채소와 생선을 팔러 새벽길을 나서던 어머니를 따라 나와 신문을 돌렸다. 술집을 찾아 껌과 깨엿을 팔기 전까지 오후 내내 대전역 주변에서 동아일보 등 당시 석간신문을 팔았다. 대전시외버스터미널, 아카데미극장, 왕생당구장, 대지다방 등이 주된 공략 대상이었다. “다들 어려웠어요. 대전역 대합실(맞이방)의 긴 나무의자에는 지게꾼들이 늘비했죠. 일거리가 많지 않아 모자를 뒤집어쓰고 선잠을 자곤 했어요. 다행스럽게도 저는 하루 종일 발품을 팔면 어머니보다 벌이가 나을 때도 있었어요.”
하지만 짭짤한 수입에는 대가가 따랐다. 이른바 ‘나와바리’(영업 구역을 뜻하는 일본어)를 주장하는 동종업계의 형들에게 걸리면 혼쭐이 났다. 종종 뭇매를 맞아 온몸이 시퍼렇게 멍들기도 했다. 이를 발견한 어머니가 깜짝 놀라 물으면 “넘어졌다”며 웃어넘겼다. 그는 나중에 태권도 사범 자격증(5단)을 땄는데 당시 호신을 위해 도장을 다닌 결과였다.
세상은 어둡지만은 않았다. 지금의 동명중학교 전신인 고등공민학교에 다닐 때 정흥모 교사는 빵집에서 허기를 채워주면서 “넌 할 수 있어. 잘될 거야”라고 격려했다. 장 청장은 지금도 그 선생님을 만나고 스승의날에는 꽃바구니를 보낸다.
용기를 잃지 말라며 신문을 돌리던 자신에게 지폐를 쥐여줬던 대흥동성당 신부, 시간을 절약하라며 자전거를 선물해준 축구공 공장 김영호 대표도 기억에 생생하다. 장 청장은 “세상을 원망하려 할 때 이분들이 ‘인간은 뛰어넘은 역경의 숫자만큼 강해진다’는 믿음을 심어줬다”고 회고했다. 그는 군복무를 하던 1976년 대전시 공무원 시험에 합격해 34년간 공직 생활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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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청장은 공무원 생활을 하면서 목원대에서 학사와 석사, 대전대에서 박사(행정학)를 취득하고 배재대 겸임교수도 지냈다. 그는 앞으로 가끔은 강연 등을 통해 미래에 대해 희망을 찾지 못하는 청소년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이런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목표를 분명하게 갖고 어려운 일이 있어도 절대 좌절하지 마세요. 땀으로 적셔진 꿈은 꼭 이뤄집니다.”
지명훈 기자 mhj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