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구 역학’ 가치 재조명한 이선경 조선대 철학과 교수
이선경 조선대 객원교수는 “이원구의 철학은 ‘구체적 삶 속에서 인(仁)의 실현’을 목표로 했다”고 10일 말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당대에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채 사라졌다고 해서 아무런 의미가 없는 건 아니다. 뛰어난 사상은 기억하고 연구하는 후학이 있는 한 바스러져 먼지로 흩어지는 운명을 딛고 또 다른 미래의 가능성으로 살아난다.
조선 후기 평생 밭을 갈고 면화를 기르면서 오로지 독서와 사색을 통해 독창적인 역학(易學)의 경지를 개척한 철학자가 있다. 경북 약목(현 칠곡군) 출신의 학자 일수 이원구(一수 李元龜·1758∼1828)다. ‘이원구 역학―18세기 조선, 철학으로 답하다’를 최근 낸 이선경 조선대 철학과 객원교수(51)는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10일 “주자학의 계승자임을 자처하면서도 조선 후기 실학의 경세론에 탄탄한 이론적 토대를 제공한 인물”이라고 소개했다.
“세간에 혹 인륜(人倫)은 높이면서 산업(産業)을 속되다고 하는 자도 있고, 산업은 취(取)하면서 인륜을 가벼이 여기는 자도 있으니 되겠는가?…인륜과 산업은 하나인데, 둘로 하여서 서로 싸우니 애석하구나!”(이원구의 ‘심성록·心性錄’에서)
이 교수에 따르면 이원구는 중국 역학의 수용과 이해를 넘어 자신만의 새로운 사상을 펼쳤다. 핵심은 ‘건곤론(乾坤論)’이다. 하늘을 상징하는 건(乾)괘 위주였던 조선 성리학자들의 역학과는 달리 이원구는 땅을 상징하는 곤(坤)괘에도 주목했다. 이 교수는 “18세기 후반 조선의 모순이 인륜(건)과 산업(곤)의 대립과 분열에 있다고 본 그는 ‘곤’의 현장을 바탕으로 건곤을 통합해 산업 속에서 인륜이 실현돼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정덕(正德)과 이용후생(利用厚生)이 조화를 이뤄야 한다는 건 북학파들의 공통적인 생각이었지만 경세론을 뒷받침하는 이론적 탐구는 빈약했다”며 이원구 역학의 가치를 설명했다.
이원구에게는 학맥(學脈)이랄 게 딱히 없다. 홀로 솟아났고, 조용히 스러졌다. 당대 영호남 유림에 그의 이름이 점차 알려졌지만, 제자들이 학단(學團)을 형성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그런 이원구를 재발견한 이는 1950, 60년대 한국 철학계의 대표적 학자인 박종홍(1903∼1976)이었다. 그는 논문에서 이원구가 “300년 뒤 나를 알아줄 이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고 전했다. 이원구의 사상은 한국의 ‘오래된 미래’가 될 수 있을까.
조종엽 기자 jj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