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범석 도쿄 특파원
이런 일들이 일본 내에서 많이 일어나고 있다. 최근 한 아기 용품 제조업체는 유아용 물티슈 제품 측면에 적은 ‘전국의 엄마를 응원합니다’라는 문구를 삭제했다. 제품이 나온 지 12년이 지나서야 문구를 없앤 이유가 뭘까.
5월 초 일본의 한 여성이 “아기 엉덩이를 닦는 사람은 엄마만이 아니다”라며 해당 업체에 항의 메일을 보냈다. “왜 육아 책임을 어머니들에게만 지도록 하는가. 다른 양육자들에게 소외감을 주는 것 같다”는 이유에서다. 이 문구를 ‘아이를 키우는 모든 사람을 응원합니다’로 바꾸고 싶다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서 서명 운동도 벌였다. 서명 건수가 한 달 만에 5000건을 넘을 정도의 반응이 이어지자 업체는 지난달 말 응원 문구를 없애기로 결정했다. “사회 변화 속에서 다양성을 반영해야 한다”는 것이 업체 관계자의 설명이다.
“집안일을 왜 엄마만 하냐”는 항의가 이어지자 프로그램 제작진은 이 노래를 삭제했다.
여성의 활발한 사회 진출, 맞벌이 부부 증가 등으로 육아를 더 이상 ‘여성의 몫’으로만 보지 않는 세계적인 흐름이 있다. 일본 사회도 최근 이 조류를 탄 듯하다. 성차별, 성 역할 고착화에서 나타나는 불합리함을 극복하기 위한 젊은 일본 여성들의 노력이 나타나는 것이다. 4월 말 도쿄 신주쿠(新宿)에서 열린 여성 인권 집회에서 만난 인권 운동가 미조이 모에코(溝井萌子) 씨는 “사소한 것부터 고쳐 나가다 보면 일본 사회를 조금씩 움직일 수 있다”고 말했다.
찬물을 끼얹는 사람들도 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측근 중 한 명인 하기우다 고이치(萩生田光一) 자민당 간사장 대행은 최근 지방 강연회에 참석해 “남성이 육아하는 것은 아이에게 폐를 끼치는 것이다. 아이가 엄마와 같이 있을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는 발언을 해 논란을 일으켰다. “자식을 낳지 못하는 여성은 복지 대상에서 제외시켜야 한다”는 모리 요시로(森喜朗) 전 총리, 여성을 “아이 낳는 기계”라고 말한 야나기사와 하쿠오(柳澤伯夫) 전 후생노동상 등 출산 및 육아와 관련한 자민당 정치인들의 ‘망언’ 역사는 오래됐다.
말이 곧 그 사람의 인식 수준이다. 저출산 해결, 여성 인재 등용을 외치는 아베 정권에 가장 시급한 해결 과제가 무엇인지, 일본 국민은 아는데 정권을 쥔 그들만 모르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