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성윤 잡지 에디터
이쯤 되면 눈치 챘을 테니 사과부터 해야겠다. 흡사 ‘공부 중인 학생인데 동영상 하나만 봐달라’며 남의 집 대문에 발을 끼운 극성 종교인처럼, 모호한 제목과 엉뚱한 서두로 주제를 교란한 것에 대해서. 사실 이 글은 철저히 페미니즘에 복무한다. 좋은 말씀 전하러 온 것이다. 이 지면에 여태 한 번도 페미니즘에 대해 쓰지 않은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두 명의 여성 필자가 더 있는데 내가 나서는 것 역시 발언권을 빼앗는 것이 아닌가? 세간에 나온 얘기 외에 더 할 말이 있는가? 시의적절한가? 모두 진심이었으되, 어쩌면 모두 핑계였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내가 분위기에 개의치 않고, 꾸준히 페미니즘을 말하고자 마음먹은 데에도 이유가 있다. 첫째로, 남성의 지지에 여전히 쓸모가 있어 보였기 때문이다. ‘맨박스’를 위시한 다른 한쪽의 이야기를 알릴 수 있기도 했고, 동일한 주제라도 발화자가 남성일 때 다른 맥락이 생기곤 했다. 둘째로, 실제로 개선의 여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껏 겪은바 페미니즘에 대한 비난은 대부분 ‘게으름’에 연원했다. 역사, 관련 논의, 통계, 어떤 부분도 찾아보지 않고선 불평등이 존재하지 않는다느니,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느니, 내키는 대로 말해도 된다고 믿는 것이다. 그 발상부터가 ‘백래시’(반발)인 셈. 개선의 여지가 있다는 것은 이처럼 의도적으로 게으른 이들이 아니다. 분위기가 파탄 난 후 조용히 ‘방금 말한 내용은 어디에 나와 있냐’고 물어오는 이들이다. 피상적으로 파악해 막연히 불편해하던 이들 말이다.
무엇보다 나는 페미니즘이 우리 모두의 문제라고 믿기 때문이다. 물론 기본적으로 여성의 인권 문제이겠으나, 궁극적으로 인류가 지향하는 보편적 가치를 사회가 획득하는 과정이며 불평등 구조가 축적한 갖은 병폐를 해소하려는 움직임이다. 자신을 페미니스트라 규정할 때, 나는 스스로를 ‘조력자’가 아닌 시민 ‘당사자’로 느낀다는 뜻이다. 그러니 남성들의 부적절한 농담을 흘려넘기려 할 때건 혜화역 시위를 지켜볼 때건 조바심이 일곤 한다. 혹시나 나는 무임승차자가 아닐까? 좀 더 비장하고자 한다면, 그 조바심을 시대에 대한 책임감이라 표현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오성윤 잡지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