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재윤 경희대 외식경영학과 교수
이름이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주목해야 할 셰프가 있다. 바로 최근 향년 67세 젊은 나이에 영면에 든 고 고재길 셰프다. 40여 년간 조리 현장을 지킨 그의 공로는 그 어떤 세계적인 셰프와 비교해도 모자람이 없다.
고 셰프는 세계미식가협회의 유일한 한국인 정회원이자, 국가 VIP 만찬을 위해 크고 작은 행사를 진두지휘하며 한식의 대중화 및 세계화를 위해 살아왔다. 그는 40년 동안 조리 현장에 몸담으며 한국 대표 메뉴 개발에 매진해 수많은 레시피를 개발한 요리 명인이다. 그가 남긴 1만여 개의 레시피에는 서민 음식인 육개장, 갈비탕, 삼계탕부터 일식, 중식 등 세계 각국의 요리까지 담겨 있다.
광고 로드중
우리는 셰프에 대한 평가에 인색하다. 반면 올해 초 프랑스의 위대한 셰프 중 한 명인 폴 보퀴즈가 91세로 세상을 떠나자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보퀴즈는 프랑스 요리를 바꾼 인물로, 전국의 주방에서 요리사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고 애도했다. 보퀴즈가 프랑스 요리를 바꿨다면, 고 셰프는 한국 요리를 바꿨다고 감히 평하고 싶다.
그는 쉐라톤워커힐 호텔 외식사업부 수석조리장으로 근무하다 2007년 종합식품기업 아워홈 수석조리장으로 자리를 옮긴 후 ‘아워홈에서 만드는 모든 음식은 정직한 요리’라는 요리철학과 신념을 실천했다. 사측은 그를 기리기 위해 유족에게 공로패를 전할 예정이라고 한다.
자신이 직접 만든 요리를 먹고 누군가 미소를 짓는 모습을 보는 게 최고의 기쁨이라던 그는, ‘고재길’이라는 이름 하나만으로 신뢰할 수 있는 브랜드를 일궈내는 꿈이 있었다. 서재에 남긴 각종 훈장과 상장, 그리고 65권의 책으로 묶인 1만여 개의 레시피가 그의 발자취를 말해주고 있다.
고재윤 경희대 외식경영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