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MZ 피스트레인 뮤직페스티벌’의 일환으로 23일 오후 강원 철원군 노동당사 터에서 공연한 가수 선우정아. 그는 김민기의 ‘새벽길’을 부른 뒤 “‘해말간 새벽길 맨발로 걸어가 봐도 좋겠네’의 가사가 머지않은 평화를 상징하는 듯해 골랐다”고 했다. DMZ 피스트레인 뮤직페스티벌 제공
23일 오전 9시경, 서울역 승차장에서 기차를 기다리던 승객들이 깜짝 놀랐다.
11번 플랫폼에서 시작된 아프리카 타악기 그룹 ‘쿨레칸’의 난타 소리 때문이다.
‘제1회 DMZ 피스트레인 뮤직페스티벌’(이하 피스트레인)의 출발 신호였다. 9시 35분이 되자 쿨레칸의 요란한 환대를 받은 140여 명을 태운 DMZ 평화열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예약한 시민 70여 명, 청년예술가들, 박원순 서울시장 등이 3량짜리 미니 특별열차의 객석을 메웠다. 난타는 서막에 불과했다. 서울역을 떠나 강원 철원군 백마고지역까지 이동하는 2시간 50분 동안 ‘이동식 축제’가 펼쳐졌다.
‘이제는 정말 떠나가야 하는 길 위에 서서/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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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여행의 백미는 뭐니 뭐니 해도 도시락. 주최 측에서 탑승 전 배포한 ‘평화도시락’은 이북식 만두, 두부밥 등 북한 음식들을 선보였다. 삶은 계란을 까먹으며 박은석 음악평론가, 정정호 중앙대 영문과 교수 등의 평화 연설을 들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청년예술가가 만든 평화에 관한 애니메이션도 스크린에 펼쳐졌다.
철원군 백마고지역으로 가는 DMZ 평화열차 안에서 음악 공연을 즐기는 승객들. DMZ 피스트레인 뮤직페스티벌 제공
이번 축제의 중심은 강원 철원군 동송읍 고석정 인근 특설무대 3곳이었다. 한탄강의 아찔한 절경에 싸인 이곳 무대의 규모는 웬만한 대형 록 페스티벌에 뒤지지 않았다. 프랑스 전자음악 그룹의 공연이 끝난 뒤 만난 동송읍 이평리 부녀회장 박갑점 씨(64)는 “1975년 여기로 시집온 뒤 이런 축제는 처음”이라면서 “늘 보는 두루미는 북과 남을 오가는데 사람은 그리 못 해 안타깝다. 평화가 다가오는 것 같아 기분이 너무 좋다”고 했다.
외신들도 열띤 현장 취재를 벌였다. 중국 ‘이차오 미디어’의 밍쉬 편집장은 “비무장지대(DMZ)의 존재조차 모르는 중국인이 많다. 이 역사적인 축제를 통해 세계인들이 분단의 참상과 평화의 필요성에 대해 알게 됐으면 한다”고 했다.
6·25전쟁 발발 58주년에 즈음해 무료로 진행한 이 행사에는 이틀 동안 약 1만2000명이 다녀갔다. 이승환, 크라잉넛, 장기하와 얼굴들 등 국내외 음악가가 출연했다. 내년 이맘때 2회 행사가 열린다.
철원=임희윤 기자 i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