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종 정책사회부 차장
“제가 ‘그들’이라면 억울할 것 같아요. 이름 앞에 ‘살인자’라고 붙어 있으니 말이에요.”
A가 최근 만난 정부 관계자는 혀를 끌끌 찼다. 누가 살인을 하지 않았는데도 이런 어마어마한 누명을 썼단 말인가. A는 ‘그들’을 찾아 나섰다. 첫 번째 억울한 누명을 쓴 이는 ‘살인개미’로 널리 알려진 ‘붉은불개미’다.
“꼬리 부분의 날카로운 침을 보세요. 찔리면 불에 덴 것처럼 통증이 와요. 침에는 염기성 유기화합물인 솔레놉신, 독성물질인 포스폴리파아제, 히알루로니다아제 등이 섞여 있어요.”
그렇다면 살인개미가 맞지 않는가. 하지만 A는 ‘곤충독성보고서’를 들춰보는 순간 고개를 갸웃했다. 꿀벌의 독성을 1로 볼 때 붉은불개미는 1.2에 불과하다. 말벌과 비교하면 5분의 1 수준이다. 말벌이라면 모를까 붉은불개미를 살인자라고 부르긴 찜찜하다.
‘미국에선 한 해에 100여 명이 붉은불개미에게 물려 사망한다’는 기사도 오류투성이였다. 정확한 통계는 북미에서 70여 년간 붉은불개미에게 물려 사망한 사람은 80여 명이다. 하지만 이들도 100% 붉은불개미 때문에 숨졌는지 확실하지 않다. 평소 곤충 독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이 물리면 급성 쇼크로 사망할 수 있다.
결국 ‘살인개미’는 누명에 가깝다. 이때 “나도 억울하다”며 ‘살인진드기’가 A를 찾아왔다. 최근 국내에선 한 70대가 ‘살인진드기’로 불리는 ‘작은소참진드기’에게 물려 사망했다. 참진드기가 범인인지 확인하기 위해 질병관리본부 감염병감시과를 찾았다.
A는 참진드기를 찾아가 “너는 살인범”이라고 외쳤다. 참진드기는 억울해했다. “나에게 물려 죽은 사람들은 대부분 혼수상태 등 증상이 심해진 뒤에야 병원에 갔기 때문이에요. 물려도 고열과 복통 등 초기 증상이 있을 때 병원을 찾으면 항바이러스제 치료를 통해 대체로 회복돼요. 그래도 제가 ‘살인진드기’란 말이에요?”
한참을 고민한 A는 죽을 수 있음을 알면서도 사람을 문 살인진드기에겐 ‘미필적 고의’가 있다고 결론 내렸다.
언어의 각인효과는 매우 크다. 곤충 이름에 ‘살인’을 남발하면 괜한 공포심을 키울 수 있다. 최근 공포영화의 주인공이 된 두 곤충 사례를 보더라도 과학적 사실을 토대로 한 작명(作名)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일깨워준다. 섣부른 공포는 과잉 대응을 낳는다.
김윤종 정책사회부 차장 zoz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