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52시간 태풍이 온다]<3>게임업계의 아우성
#국내 대형 게임회사에서 서비스 기획을 담당하는 B 씨. 회사에서는 주 52시간 근무제에 앞서 유연근무제를 적용했지만 석 달째 법정근로시간을 초과해 근무하고 있다. 근무시간을 줄이겠다는 경영진의 의지는 분명하지만 24시간 돌아가는 서비스에 한시라도 눈을 떼면 매출 하락으로 이어진다. B 씨는 “월 단위로 근무시간을 관리하다 보니 시스템 업데이트 시점처럼 일이 몰리는 달에는 자칫 법을 위반하게 될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요즘 게임업계 최대 고민은 주 52시간 근무제다. 글로벌 게임 서비스를 위해 24시간 근무를 해야 하고 신작 출시를 앞두고 일을 몰아서 해야 하지만 업계의 특수성을 반영하지 않은 법 제도가 갑작스럽게 시행되기 때문이다. 게임업계에서는 경직된 근로시간 단축제도가 세계로 뻗어 나가던 국내 게임 산업의 경쟁력을 훼손할 수 있다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이런 변화가 게임업계 특유의 성과 지향적이면서도 자유롭고 창의적인 문화를 송두리째 뒤흔들 것이란 지적이 적지 않다. 한 게임회사 인사 담당 임원은 “성과를 내서 인센티브를 많이 지급받고 싶어 하는 직원들도 있을 텐데 획일적인 법은 이 같은 자발성을 무시할 수 있다”며 “프로야구 선수가 공을 잘 던지기 위해 근로시간 외에 연습하는 것을 막는다면 글로벌 경쟁 시대에 맞지 않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게임업계 관계자는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으로 선택적 근로시간제 같은 제도 안에 직원들을 강제로 가둬야 해 자유로운 문화에서 오는 창의성과 독창성이 사라질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주 52시간 근무제가 산업 경쟁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해 국내 게임 수출액은 39억 달러(약 4조3000억 원)로 전년보다 19.2% 증가했다. 하지만 업계 특성을 감안하지 않은 경직된 근로시간 단축은 모처럼 확보한 새로운 성장동력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 위정현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한국게임학회장)는 “중국 게임회사들 사이에서는 최근 한국 게임회사들의 실시간 대응이 늦어지고 있다는 말이 나온다”며 “주 52시간이라는 기계적인 근로시간 균형에 얽매이다 보면 글로벌 경쟁력을 잃고 말 것”이라고 지적했다.
○ 작은 업체일수록 범법자 양산 우려
정부는 이런 현실을 외면하고 있다. 이달 8일 문화체육관광부와 고용노동부 주최로 열린 ‘콘텐츠 분야 노동시간 단축 대응방안 토론회’. 게임업계 관계자가 “게임회사들도 재량근로제를 실시할 수 있나”라고 묻자 고용부 관계자는 “내부적으로 검토해봐야 한다”며 즉답을 피했다. 근로기준법 개정안에 따르면 ‘IT업계의 정보처리 시스템의 설계 또는 분석 업무’ 등에 종사하는 근로자들은 재량 근로시간제를 적용할 수 있다.
재량근로제는 업무 특성상 근로자가 얼마나 일했고 어떻게 일했는지 사용자가 뚜렷이 구분할 수 없을 때 노사가 합의한 경우 일정 시간을 근로한 것으로 보아 근로시간을 산정하는 방법이다. 큰 틀에서 게임업계도 정보처리 시스템의 설계 또는 분석 업무 범주에 포함된다고 볼 수 있지만 고용부는 판단을 보류했다.
업계에서 이러다 ‘범법자’를 양산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당연하다. 게임업계 관계자는 “게임업계 고용의 70∼80%를 차지하지만 추가로 인력을 고용할 자금력이 떨어지는 중소·중견 게임회사들이 더 곤란한 상황에 처할 것”이라고 전했다.
신무경 기자 ye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