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정민 파리 특파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 이후 전 세계가 ‘멘털 붕괴’에 빠진 건 ‘우리 편’ 보스인 미국이 식구(동맹)를 버릴 듯한 태도를 보이기 때문이다.
8, 9일 캐나다 퀘벡에 ‘미국 편’ 중 세계에서 가장 잘사는 나라들만 모였다.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같은 편 단합대회여야 할 이 자리는 보스(미국)에 대한 원망과 성토로 가득 찼다. G6(미국을 뺀 나머지 6개국)는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가 그냥 레토릭(수사·修辭)인 줄만 알았다. 그런데 지난달 미국이 진짜 자신들에게도 철강과 알루미늄 관세를 매기자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가 “어떻게 적국(敵國)에나 쓸 안보 위협을 관세 부과의 이유로 들 수 있느냐”며 항의하자 트럼프 대통령은 뜬금없이 1812년 전쟁을 예로 들며 “당신들은 백악관을 불태우지 않았느냐”고 농담을 던졌다. 200년 전 영국군이 한 일을 이유로 70년 옆집에 살아온 식구(캐나다)에 총을 겨눈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G7 회의 전후로 동맹을 향해 가장 많이 쓰는 표현은 ‘rip off’다. ‘뜯어가다’ ‘훔쳐가다’는 뜻으로 도둑에게나 쓰는 표현이다. 예전엔 가족 같고 식구 같던 동맹도 지금의 트럼프 대통령에겐 ‘내 돈을 뺏어가는 도둑놈’,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닐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런 그를 향해 “당신이 동맹을 괴롭히면 적국인 중국을 도와주는 것”이라는 유럽의 설득은 씨알이 안 먹힌다. 트럼프 대통령의 머릿속엔 동맹이든 적국이든 내 돈 빼앗아 가면 도둑놈이긴 매한가지다.
오히려 그로서는 그동안 하나도 얻을 게 없었던 적국과 상대하는 게 더 나을 수 있다. 대표적인 나라가 북한이다. 북한과는 악화일로만 걸었으니 뭐라도 얻어내면 성과다. 김정은이 거래의 방아쇠를 먼저 당겼다. ‘완전한 비핵화’라는 엄청난 수익을 제시한 것이다. 미국 어느 대통령도 이뤄내지 못한 일이다.
트럼프가 원하는 게 노벨 평화상과 같은 업적이라면 진정한 비핵화를 원하는 한국과의 윈윈이 아니라, 적당한 비핵화 시늉을 원하는 북한과의 윈윈을 택할 수도 있다. 반대로 트럼프가 강력히 원하는 게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이고 김정은이 그걸 수용할 생각이 없다면 북-미 갈등은 언제든 다시 커질 수 있다.
미국과는 같은 식구(동맹)이고, 북한과는 같은 핏줄(민족)인 한국은 역사적인 북-미 정상회담을 기도하는 마음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다.
동정민 파리 특파원 ditt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