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과 싸우는 일엔 무기가 필요 없어요” 금요일마다 가자지구 시위 현장에 모든 사람이 장벽 떠난 뒤에야 하얀제복이 피로 물든채 집으로 장례식에 주민 수천명 참석 애도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 팔레스타인 지부가 2일 트위터에 올린 라잔 나자르의 사진.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 팔레스타인 지부 트위터
라잔 나자르(21)의 어머니 사브린은 피로 물든 딸의 조끼를 끌어안고 오열했다.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 사는 나자르는 이스라엘 군경과 충돌 과정에서 부상한 시위대를 치료해 온 의료봉사자였다. 사브린은 “내 딸은 3월 30일 시작된 ‘위대한 귀환 행진’ 이후 매주 금요일 오전 7시부터 오후 8시까지 분리장벽 근처에서 사람들을 치료했다. 모든 사람이 장벽을 떠난 뒤에서야 하얀 제복이 피로 물든 채 집으로 돌아왔다”며 먼저 세상을 떠난 딸을 안타까워했다.
나자르는 1일 가자지구 남부 칸유니스의 분리장벽 부근에서 이스라엘군이 쏜 총탄을 맞아 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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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지구 보건 당국은 이스라엘군이 손을 들고 장벽에 접근하는 흰 제복 차림의 구급대원들을 향해 최루탄을 발사하는 영상을 공개하기도 했다. 이 영상은 나자르가 총격을 당하기 수 분 전에 촬영된 것이다. 그의 사촌 이브라힘은 “평소 나자르에게 (장벽에) 접근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얘기했지만, 그녀는 죽음이 두렵지 않고 (다친) 젊은 남성을 돕고 싶다고 말했다”며 슬퍼했다.
나자르는 병원에서 응급구조대원으로 2년간 훈련받은 뒤 현장에 투입돼 시위 중 다친 여성과 어린이들의 치료를 도왔다. 나자르는 지난달 뉴욕타임스(NYT) 인터뷰에서 “우리의 목표는 생명을 구하고 사람들을 대피시키는 동시에 ‘무기 없이 우리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세상에 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2일 치러진 나자르의 장례식에 팔레스타인 주민 수천 명이 참석했다. 가자지구 보건 당국은 나자르를 3월 30일 이후 119번째 팔레스타인 사망자로 기록했다. 사브린은 “이스라엘군은 내 딸이 구급대원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며 “저격수의 표적이 돼 가슴에 총탄을 맞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니콜라이 믈라데노프 유엔 중동특사는 이날 트위터에 “의료진은 표적이 아니다. 이스라엘은 무력 사용을 자제할 필요가 있고 하마스도 장벽에서의 사고를 예방해야 한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도 가자지구에서 발생한 의료봉사자 사망 사건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시하고 의료진에 대한 보호를 촉구했다. 이스라엘군은 성명을 통해 나자르의 사망 사건을 조사할 것이라고 밝히면서도 “하마스가 의도적이고 조직적으로 민간인을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고 책임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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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로=박민우 특파원 minw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