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英취재진, 원산공항서 방사선량 측정계-위성전화 압수당해

입력 | 2018-05-23 03:00:00

[문재인 대통령-트럼프 정상회담]北, 한국 빼고 ‘풍계리 이벤트’ 시작




북한이 22일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이벤트 취재를 위한 외신들의 방북을 허가하면서 비핵화 의지를 행동으로 보이는 첫발을 뗐다. 그러나 당초 약속과 달리 한국 취재진의 방북은 불허했다. 국제사회에 대한 약속 이행과 남북 관계 개선을 별도 트랙으로 다루면서 한반도 비핵화 논의의 주도권을 가져가겠다는 속내를 내비친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선 지나친 대북 저자세가 ‘한국 패싱’을 야기했다는 지적도 있다.

○ 영국 취재진 “방사선량 측정계 압수당해”

22일 오전 9시 45분경 중국 베이징(北京) 서우두(首都)공항에서 미국 영국 중국 러시아 기자들을 태운 고려항공 전세기(JS622)가 원산을 향해 출발하며 ‘풍계리 이벤트’가 시작됐다. 16일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이 북-미 정상회담 재고 입장을 밝힌 이후 북-미 간 냉기류가 형성된 가운데서도 풍계리 행사는 예정대로 이행하겠다는 것이다.

일부 언론 보도와 달리 북한이 비자 비용으로 1만 달러(약 1085만 원)를 요구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초청을 받은 외신 기자들은 “수수료(fee)는 없었다”거나 “160달러를 사전에 냈고, 평소 (북한) 출장비 정도의 비용이 들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고가의 사증 비용 요구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제재 결의(대량 현금 유입)에 저촉될 수 있다는 점을 북한이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영국 스카이뉴스 톰 체셔 아시아 특파원은 22일 오후 원산 도착 후 “(숙소인) 호텔에서 오찬 메뉴로 스테이크와 상어지느러미 수프, 자라튀김, 퐁뒤 등이 포함된 (뷔페식이) 제공됐다”며 “큰 홀에 프랭크 시내트라의 ‘마이 웨이’ 바이올린 연주가 흘러나왔다. ‘기괴한 잔치’였다”고 전했다. 체셔 특파원은 이어 “북한 당국자는 (현지) 법률을 지켜야 한다고 경고했다”며 “한 기자는 (당국자 설명에) ‘충분하게 집중’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지적을 받았다”고 전했다. 스카이뉴스는 북측이 원산공항에서 “실험장은 안전하니 (방사선량 측정계가) 필요 없을 것”이라며 방사선량 측정계와 위성전화기를 압수했다고 전했다.

○ 한국 언론만 빼며 ‘한반도 운전석’ 노린 듯

김정은은 지난달 남북 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기념촬영을 한 뒤 우리 기자들을 향해 “잘 연출됐습니까?”라고 물어 장내에서 웃음이 터진 적이 있다. 우리 언론과 첫 접촉인데도 거부감 없는 모습을 보인 것. 하지만 북한은 15일 “통신과 방송 1개사 4명씩 총 8명을 초청한다”고 알려 왔지만 22일 우리 기자단 명단 수령을 거부했고 베이징까지 간 취재진을 원산행 고려항공 전세기에 태우지 않았다.

북한이 풍계리 폐기 이벤트란 ‘국제적 약속’은 이행하면서도 한국 초청이란 ‘남북 간 약속’을 어긴 것은 결국 남북 관계에서 주도권을 확실히 틀어쥐겠다는 의도를 내비친 것으로 보인다. 남한을 압박하며 북-미 간 중재 역할 강화를 유도하거나 대미 불만을 한국에 쏟아내며 미국을 간접 압박하겠다는 것. 총련계 조선신보는 22일 “조미(북-미) 대화에서 진전이 이루어지면 (남북) 고위급 회담을 중지시킨 사태도 저절로 해소되리라고는 볼 수 없다”고 전했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 베이징=윤완준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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