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무 LG회장 타계]위기를 기회로… 과감한 경영의 승부사
취임 당시 30조 원 규모(1994년 말)였던 LG그룹 매출은 이후 GS, LS 등을 계열분리하고도 다섯 배 이상인 160조 원 규모(2017년 말)로 성장했다. 해외 매출은 취임 당시 10조 원에서 열 배 이상인 110조 원대로 급증했다. 비결은 고인의 과감한 투자와 결단이다. 그는 2차전지, 디스플레이 등에 대한 과감하고 꾸준한 투자로 전자, 화학, 통신서비스를 회사의 세 축으로 세웠다.
○ 2차전지 세계 1위 만들려 20년 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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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2월 22일 LG그룹 회장 이취임식에서 고 구본무 회장이 LG 깃발을 흔드는 모습. 구자경 명예회장의 장남인 고인은 가문의 장자 승계 원칙에 따라 은퇴한 아버지의 뒤를 이어 50세 나이에 LG그룹 3대 회장으로 취임해 23년간 회사를 이끌었다. LG그룹 제공
외환위기 시절인 1999년 김대중 정부가 ‘빅딜’을 추진하며 반도체 사업을 현대그룹에 넘기려 하자 “대승적 차원에서 모든 것을 버리겠다. 하지만 디스플레이 사업만큼은 넘길 수 없다”고 버텼다. 사업을 지켜낸 구 회장은 네덜란드 필립스로부터 16억 달러를 유치해 LG필립스LCD(현재 LG디스플레이)라는 사명으로 합작회사를 설립했다. 구 회장의 결단으로 탄생한 LG디스플레이는 세계 액정표시장치(LCD) 시장 선두에 올랐다. 중국 기업들의 추격으로 LCD 시장이 포화 상태에 이르자 구 회장은 유기발광다이오드(OLED)로 빠르게 옮겨 갔다.
1990년대 말 데이콤 인수전에서도 과감한 승부수를 던졌다. 당시 통신사업은 ‘21세기 황금알’로 불리며 국내 굴지 기업들이 각축전을 벌였다. 데이콤 최대주주였던 삼성과의 치열한 경쟁 끝에 데이콤을 인수하며 LG는 정보통신 수직 계열화에 성공한 국내 최대의 정보통신 그룹이 됐다. 2010년에는 LG텔레콤, LG데이콤, LG파워콤 등 통신3사를 합병해 LG유플러스를 출범시켰다.
LG전자가 미래 먹거리로 삼고 있는 자동차 전장 사업의 기초도 구 회장이 닦았다. LG전자는 2013년 LG CNS 자회사인 ‘V-ENS’를 인수해 전장 사업을 담당하는 VC사업본부를 신설했다. 당시 구 회장은 이우종 V-ENS 대표를 VC사업본부장으로 영입하는 과정에서 “VC사업본부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며 부사장이 아닌 사장 직책을 주도록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LG와 LG전자는 LG 계열사 인수합병(M&A) 금액 중 가장 큰 1조4440억 원에 오스트리아 헤드램프 업체 ZKW를 인수하는 등 사업 규모를 키워 나가고 있다.
뼈아픈 기억도 있다. 빅딜 과정에서 반도체 사업을 접은 일이다. LG는 2007년 60주년 사사를 편찬하며 반도체 빅딜 당시 상황에 대해 ‘인위적 반도체 빅딜은 한계 사업 정리, 핵심 역량 집중이라는 당초 취지와 어긋나는 결과를 초래했다’며 ‘그 평가는 후일 역사의 몫으로 남게 됐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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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10월 구본무 LG그룹 회장이 전기차 배터리 개발을 위해 만든 시제품을 직접 테스트하는 모습.
구 회장은 취임한 해 직접 만든 국내 대학생 해외탐방 프로그램 ‘LG 글로벌 챌린저’ 발대식과 시상식에 2016년까지 22년 동안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 건강이 악화돼 수술을 받았던 지난해 말에야 처음으로 구본준 LG그룹 부회장에게 바통을 넘겼다.
국내외 석·박사급 이공계 인재들을 모아놓고 계열사 최고경영자와 최고기술책임자(CTO) 등이 직접 사업을 설명하는 ‘LG 테크노 콘퍼런스’도 구 회장이 2012년 만들었다. 한국과 미국에서 두 차례씩 열리는 이 행사에 구 회장은 2012년부터 2017년까지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 이 행사를 통해 만난 인재만 3000명이 넘는다.
구 회장이 마지막으로 참석했던 LG 테크노 콘퍼런스 행사는 2017년 2월. 구 회장은 만찬 후 참석자 400여 명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며 “여러분처럼 우수한 인재들과 세계 시장을 선도해 나가려 한다. LG그룹은 여러분과 같은 인재 한 사람, 한 사람을 소중한 자산으로 여긴다. LG그룹의 인재가 돼 R&D 시너지를 내어주길 기대한다”고 당부했다.
김재희 jetti@donga.com·서동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