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이즈미 지하루 일본 출신 서경대 국제비즈니스어학부 교수
올해는 나흘 동안 단편 작품을 포함해 20편의 영화를 봤다. 모두가 재미있었지만 한 작품을 든다면 개막작이었던 ‘야키니쿠 드래곤’이다. 재일 한국인 정의신 감독이 연출한 작품으로 올해 내가 전주에서 본 첫 번째 작품이기도 하다.
작품의 무대는 1969년부터 1970년대, 고도 경제 성장 시기의 오사카로 이타미 공항 활주로 바로 옆의 국영지에 살고 있는 재일교포 가족의 이야기다. 가난하고 차별받지만 ‘야키니쿠 드래곤’이라는 곱창구이집을 운영하는 서민의 삶이 힘 있게 그려져 있다. 이 영화는 2008년 한국에서 초연됐던 연극을 스크린에 옮겨놓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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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는 네 명의 한국인 배우가 출연했는데, 각자 맛깔난 연기를 선보였다. 재일 한국인 1세 아버지 김용길 역의 김상호는 영화의 중심에 어울리는 절대적인 존재감이 그득했다. 특히 롱테이크로 보여준 일본어 독백 장면은 가슴을 뜨겁게 한다. 서투른 일본어에 용길의 감정이 녹아있어 훌쩍이는 소리가 상영관 곳곳에서 들리기도 했다. 제주도에서 일어난 4·3사건을 피해 일본에 건너와 용길을 만난 어머니 영순 역의 이정은은 빠글거리는 파마머리로 한국어가 섞인 일본어가 절묘했다. 마치 주변에 있을 법한 한국 아줌마 그대로다. 순박한 한국인 청년 오일배 역의 임희철, 첫째 딸 시즈카에게 한눈에 반한 재미있는 한국인 남성 윤대하를 연기한 한동규는 무대에서 활약했던 배우로 극중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배경이 된 1970년대는 일본의 고도 경제 성장기로 공동체가 무너지기 시작한 시기다. 이 시기를 경계로 일본은 크게 변해간다. 규슈 지방에서 자란 나도 초등학생 때에는 시영주택에 살며 동네 사람들과 가족처럼 지냈다. 그런 삶의 모습이 나날이 변해 가던 시절을 기억한다. 당시에는 재일 한국인뿐만 아니라 일본인들도 그 삶이 비슷했다.
소품으로 예술가 오카모토 다로의 작품인 ‘태양의 탑’이 등장한다. 1970년 인류의 진보와 조화를 부른 오사카 만국박람회의 상징이다.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내게도 선망의 대상이었던 그것을 영화를 통해 다시 보니 잃어버린 것과 함께 만감이 교차했다. 일본 사회를 묘사한 작품이지만 한국인의 이야기가 담긴 한국 영화이기도 하다.
또한 새로운 만남도 있었다. 우연히 들어간 전라감영 근처의 한 카페는 마침 오픈 날이었다. 심플하고 세련된 인테리어의 가게로 정성껏 내린 커피와 과자를 내주었다. 앞으로 전주를 찾을 때마다 가고 싶은 가게다. 그 맞은편엔 예스러운 고물상이 있었다. 말수가 적은 할아버지에게 놋수저를 구입했다. 커다란 자루에 담긴 숟가락을 바닥에 쏟고 그중 10개를 골랐더니 덤이라며 한 개를 더 고르라 하셨다. 새로운 가게와 오래된 가게가 함께 어우러져 있는 모습 또한 전주의 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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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제는 내년 스무 살 성인이 된다. 전주의 긴 역사에 녹아들며 하루하루 성숙하는 모습을 내년에도 기대한다.
이즈미 지하루 일본 출신 서경대 국제비즈니스어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