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 어스/티머시 스나이더 지음/조행복 옮김/616쪽·2만8000원·열린책들
미국 홀로코스트 박물관에 있는 ‘얼굴들의 탑’. 900년의 역사를 지닌 유럽 동부의 유대인 마을 에이시쇼크(현 리투아니아 에이시스케스) 주민들의 평화로운 일상을 담은 사진들이 3층 높이로 전시돼 있다. 이들은 1941년 들이닥친 나치 군대에 의해 이틀 만에 몰살됐다. 동아일보DB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 학살에 대한 통념일 것이다. 홀로코스트는 ‘지나간’ 일이다.
정말 그럴까. 미국 예일대 사학과 교수인 저자는 이 같은 인식을 뒤집으며 ‘홀로코스트의 위험은 현재 진행형’이라고 경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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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살과 유대인에 대한 극심한 탄압은 대체로 국가제도가 파괴된 곳에서 이뤄졌다. 1938년 3월 11일 히틀러의 침공 위협에 굴복한 슈슈니크 오스트리아 총리는 더 이상 히틀러로부터 오스트리아를 지키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오스트리아라는 국가가 사실상 사라지자 당일 저녁 군중이 나치의 구호를 외치며 유대인 폭행을 시작했다. 오스트리아의 유대인은 독일 유대인이 히틀러 치하에서 5년 동안 받은 고통에 견줄 만한 폭력을 5주 동안 당했다.
같은 해 체코슬로바키아가 굴복당해 ‘수데테란트(수데텐)’를 독일에 넘겼다. 이 지역에 살던 유대인에 대한 국가의 보호가 사라지면서 유대인 1만7000명이 추방되거나 도주했다. 이듬해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해 ‘폴란드라는 나라가 존재했다는 것을 부인’하자 시민권을 잃어버린 유대인들은 게토로 내몰렸다.
소련이 점령했던 폴란드 동쪽 지역은 독일의 침공으로 ‘이중 점령’의 상황에 처하면서 국가의 흔적조차 사라졌다. 그러자 인종주의가 판을 쳤다. 나치를 피해 독일에서 미국으로 도망친 유대인 철학자 해나 아렌트는 “유대인은 다른 무엇보다도 국민국가 제도의 갑작스러운 붕괴로부터 가장 큰 위협을 받았다”고 했다.
독일에 굴복했지만 국가 제도가 살아남은 곳은 어땠을까. 북유럽 스칸디나비아 국가들과 프랑스에서 유대인은 제약은 받았을지언정 함부로 체포되거나 살해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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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국가가 파괴되고 공공기관이 붕괴하고 경제적 동기가 살인을 부추긴다면 선하게 행동할 사람은 거의 없다. 우리가 히틀러가 선전한 사상에 덜 취약하다고 생각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