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가정에 편견의 시선 여전 “동남아 못살아서 시집 왔냐… 아이는 한국말 할 줄 아나” 이주 여성들에 언어폭력 심각… 식당 주문 서투르면 쫓겨나기도 이주민 환대지수 OECD 최하위권, “혈통주의적 문화 바꾸는게 시급”
얼마 전 동네 놀이터에서 만난 한 할머니가 A 씨(38·여)에게 던진 말이다. 베트남 출신의 A 씨는 한국인 남편과 결혼해 13년째 한국에 살고 있다. A 씨는 “남편은 멀쩡하다. 사랑해서 결혼했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결국 나는 이방인’이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초등학생인 두 딸이 비슷한 일을 당할 때면 A 씨의 가슴이 미어진다. 어른 중에는 “엄마가 베트남 사람이니 너도 한국말 못하겠네”, “베트남은 못사는 나라라 여기서 사느냐”는 말을 서슴없이 하는 경우가 있다. 학교생활기록부에 “다문화가정의 자녀임에도 불구하고 특정 과목을 잘한다”고 적힌 걸 보고도 서러움을 느꼈다. 담임선생님마저 이주민을 부정적으로 본다는 생각 때문이다. A 씨는 “이주민이 많이 늘어나면서 시선이 바뀌었다고 하지만 일상 생활 속의 차별과 멸시는 내가 처음 한국에 왔을 때와 별반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A 씨가 일상에서 경험한 것처럼 한국 사회가 여전히 이주민을 비뚤어진 시선으로 바라본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10일 한양대 평화연구소(소장 최진우)에 따르면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3개 회원국 중에서 ‘이주민 환대지수(Hospitality Index)’가 21위(2017년 기준)였다. 꼴찌에서 세 번째였다. 한양대 평화연구소가 개발한 이주민 환대지수는 각 공동체가 이주민을 일상에서 맞아들이는 열린 태도를 지표화한 것이다.
한국보다 순위가 낮은 국가는 멕시코와 터키뿐이었다. 5년 전 한국의 이주민 환대지수도 똑같은 21위였다. 하지만 평균 수치는 악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주민을 대하는 한국인의 태도가 더 차가워졌다는 뜻이다.
본보 취재팀이 만난 이주민 10명도 “한국이 빠르게 선진화했다지만 이주민을 대하는 차별적 시선은 여전하다”고 입을 모았다. 3년 전 한국인과 결혼해 부산에 살고 있는 베트남 출신 이주여성 B 씨(23)는 얼마 전 한 중년 여성에게 혼쭐이 났다. 지하철 빈자리에 앉아있는데 중년 여성이 다가와 발을 툭툭 치며 “자리에서 비켜”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중국에서 온 은모 씨(42·여)도 ‘지하철 악몽’을 겪었다. 지하철에서 은 씨의 중국말 대화를 들은 한 60대 남성이 “커피 사 마실 형편도 안 될 텐데 이거라도 마시라”며 자신이 먹던 커피를 은 씨에게 건넨 것이다.
○ 더 은밀해진 ‘일상 속 차별’
모든 이주민이 대표적으로 꼽는 편견과 차별은 가까이 오지 않는 한국인의 모습이다. 이들은 버스나 지하철에서 자신의 양쪽 자리만 비어 있을 때 수치심을 느낀다고 입을 모았다. 네팔 출신 유학생 프라밧 씨(27)는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하려고 했는데 서툰 한국말에 종업원이 ‘주문할 줄 모르면 나가라’고 말해 쫓겨난 적도 있다”고 말했다.
한준성 한양대 평화연구소 연구교수는 “우리나라는 이주민들과 공생할 수 밖에 없는 이민 사회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며 “일반인들이 이주민과 직접 대면하는 일이 드물고 간접적으로만 접하다보니 오해와 오인의 소지가 많은데 이를 최소화하는 교육이 체계적으로 이뤄져야한다”고 말했다.
구특교 kootg@donga.com·김정훈·김은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