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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스동아/기고]김성민 인제대 교수, 항균제 내성, 인류 위협… 감염전문의 육성 절실하다

입력 | 2018-04-11 03:00:00

김성민 인제대 해운대백병원 감염내과 교수




플레밍의 페니실린 발견 이후 우리는 80여 년째 항균제 시대에 살고 있다. 대량생산된 ‘기적의 약’ 페니실린 덕분에 제2차 세계대전 동안 수많은 총상 감염 환자들을 살릴 수 있었고 플레밍은 1945년 노벨상을 수상한다. 그러나 그는 당시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언젠가는 누구든지 페니실린을 살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다. 사람들이 약을 쉽게, 부적절하게 적은 용량으로 투여할 것이고 몸 안에 있는 세균이 살균될 수 없는 양의 약물에 노출됨으로써 세균은 내성을 얻게 될 것이다.” 이후 300여 종의 항균제가 개발됐음에도 항균제 내성 증가 속도는 이미 항균제 개발 속도를 추월했다. 플레밍의 경고대로 항균제 내성은 인류에 중대한 위협이 됐다. 다제내성균(여러 항균제에 내성이 있는 세균)은 의료기관에서 주요 병원균이 됐고 일부 지역사회에서도 감염률이 늘고 있다. 심지어 오늘날은 대부분의 항균제에 듣지 않는 다제내성균까지도 출현해 인류는 겨우 1세기도 안 돼 항균제 위기를 맞게 됐다. 일부 사람들은 다시 항균제가 없던 시절로 되돌아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염려를 하게 됐다.

일반적으로 항생제와 항균제라는 용어가 혼용되는데 페니실린처럼 자연에서 우연히 발견돼 추출된 항생물질을 항생제라 한다. 인공적으로 합성된 항생물질도 있기 때문에 포괄적인 의미로는 ‘항균제’라고 부르는 것이 타당하다.

카바페넴 내성 장내세균(CRE)은 의사들이 마지막으로 쓰는 카바페넴이라는 광범위 항균제에 내성을 가진 장내세균이다. 장내세균은 모든 사람이 장내에 보유하고 있는 집락균으로 대표적인 균이 대장균이다. 이들 균이 집락 부위인 장을 벗어나면 요로감염, 복강 내 감염, 폐렴 등의 감염증을 일으킨다. 2000년대 초반부터 의료기관에 유행하기 시작한 카바페넴 내성 장내세균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콜리스틴 등 아주 독성이 강하고 효능이 약한 약제를 쓸 수밖에 없는 어려움이 있다. 카바페넴 내성 장내세균이 지역사회로까지 파급된다면 인류에게는 큰 재앙이 될 것이다.

황색포도알균은 그 내성이 의료기관에서 지역사회로 파급된 대표적 사례이다. 황색포도알균은 상처 감염, 종기 등 피부 연부 조직 감염의 가장 흔한 원인균이다. 페니실린이 개발될 당시에는 잘 치료됐던 질환이다. 하지만 페니실린이 사용되기 시작한 후 2년 만에 페니실린 내성 황색포도알균이 발견됐고 10년 후에는 의료기관 내에, 또다시 10년 후에는 지역사회 내에 페니실린 내성 황색포도알균이 대다수를 차지해 더 이상 황색포도알균을 페니실린으로 치료할 수 없게 됐다. 다행히 메티실린 등 효과적인 약이 개발돼 사용됐는데 1980년대 이후에는 메티실린에도 내성을 지닌 포도알균(MRSA)이 병원 환경에서 급격하게 확산됐다. 2000년대 초반에는 지역사회에도 메티실린 내성 포도알균이 등장해 확산되고 있다. 황색포도알균의 사례는 모든 종류의 항균제 내성에 대해 교훈이 되는 인류의 경험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015년 항균제 내성을 억제하기 위한 글로벌 실행계획을 발표했고 국가별로도 실행계획을 마련하도록 촉구했다. 이에 2016년 우리나라는 2020년까지 감기에 처방되는 항균제를 50%, 전체 항균제 사용량을 20% 줄이겠다는 국가 항균제 내성관리대책을 발표했다. 우리나라는 항균제 내성률이 다른 국가에 비해 상당히 높다.

항균제의 오남용이 심각해지는 이유 중 하나는 치료 효과는 극적이면서도 상대적으로 독성은 항암제 등 다른 치료약물에 비해 덜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항균제가 필요 없는 바이러스성 감기에도 쉽게 항균제를 처방하고 수술 예방적 항균제를 권고되는 것보다 과도하게 오랫동안 사용했다. 원인균을 잘 모르는 감염에 대해서는 가장 광범위한 항균력을 가진 약제부터 투여하는 습관적인 관행이 있어 왔다.

항균제 내성을 억제하기 위해서는 플레밍이 지적한 것처럼 ‘사람들이 약을 쉽게 투여하는’ 행태를 막아야 한다. 지속적인 국민 홍보와 의료인 교육이 필요하겠지만 이로써 문제가 해결되리라 기대하긴 힘들다. 대한화학요법학회와 대한감염학회는 질병관리본부와 협력해 주요 감염증에 대한 올바른 항균제 사용 지침을 개발해왔다. 지침을 반영한 항균제 사용 가이드를 모바일 앱(KSC APP)과 웹 시스템으로도 제공하고 있다. 병원 처방 시스템에 접목시킬 수 있는 항균제 처방 지원 전산 프로그램 연구도 진행 중이다.

인류에게 큰 위협이 되고 있는 항균제 내성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항균제는 꼭 필요한 상황에서만 전문가의 판단에 따라 신중하게 써야 하는 약이라는 사회적인 인식 개선이 우선 돼야 한다. 올바른 항균제 지침과 가이드 프로그램 개발, 교육이 이뤄지도록 의료인들을 지원해야 한다. 항균제 관리를 위해서는 감염전문의 육성 대책이 제대로 세워지고 실행될 필요가 있다. 이런 노력들과 함께 새로운 항균제, 항균요법의 개발이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인류에게 재앙으로 다가오고 있는 다제내성균의 문제가 더 확산되지 않고 빨리 억제되고 조절 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