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현 논설위원
지난달 정부가 2017년 국가부채를 발표했다. 국가부채 규모는 항목을 잡기에 따라 고무줄처럼 늘었다 줄었다 한다. 중앙과 지방정부의 빚에 국책은행 국영방송 등 비영리 공공기관의 부채를 더한 일반정부부채가 717조5000억 원이었다. 국내총생산(GDP)의 45% 정도다. 2016년 기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112%에 비해 절반이 안 된다. 일본(217%), 미국(106%), 독일(76%)에 비해 한참 낮다. 이 대목에서 청와대와 여당 정치인들의 목소리가 높아진다. 얼마든지 여력이 있으니 예산 지출을 더 늘리자는 주장이다.
아주 틀린 말도 아니다. 기업도 부채 비율이 낮다고 무조건 좋은 게 아닌 것과 마찬가지다. 기업을 키우려면 빚을 끌어다 설비를 들이고 사람도 더 뽑아야 한다. 정부도 경기가 좋지 않을 때 지출을 늘려 결과적으로 나라 살림을 넉넉히 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그렇게 할 수 있다.
2000∼2016년 한국의 국가부채 연평균 증가 속도(11.6%)가 32개국 가운데 4번째다. 3%대인 일본 독일이나 재정 위기를 겪은 스페인(7.0%) 그리스(4.9%) 이탈리아(3.4%)보다 훨씬 빠른 속도다. 앞으로가 더 문제다. 저출산·고령화 속도만큼이나 여기에 들어갈 연금 등 복지 수요 증가 속도도 빨라 세계 최고다. 이런 마당에 줄여도 시원찮을 공무원 수를 정부는 임기 내 17만 명 더 늘리겠다고 한다. 이렇게 외상으로 잡아먹은 소 값은 다음 세대에게 빚으로 고스란히 돌아간다. 현 세대의 몰염치다.
한국 같은 소규모 개방경제에는 언제 어디서 어떤 유탄이 날아올지 모른다. 1997년 외환위기, 2008년 금융위기의 첫 발사도 해외에서 터졌다. 점점 격해지는 미중 무역전쟁의 불똥이 언제 한국으로 튈지 모르는 상황이다. 외환위기 당시 나라가 부도 직전인데 정부는 “한국 경제는 펀더멘털이 튼튼하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요즘 “재정이 아직 건전하다”는 말이 당시 펀더멘털 타령과 겹쳐 들린다.
좋은 살림꾼은 푼돈을 모아 생긴 목돈을 잘 굴려 더 큰 돈을 만들고 살림을 키운다. 그렇게 해서 한국 경제가 힘들게 여기까지 왔다. 반대로 나쁜 살림꾼은 어렵게 쌓인 목돈을 당장 먹기에는 곶감이 달다는 식으로 한 푼 두 푼 빼먹다가 살림을 거덜 낸다. 베네수엘라 그리스 등이 어려움에 처해 있는 이유다. 대한민국은 어느 길로 갈 것인가. 기로에 놓여 있다.
김광현 논설위원 kk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