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방배초등교서 70분 인질극
○ 허술했던 초등학교 안전 시스템
오전 11시 50분경 현장에 도착한 경찰에게 양 씨는 “군대에서 당한 억울한 일을 보상해 달라”고 말했다. 이어 “(나는) 뇌전증(간질)을 앓고 있다”고 말했다. 양 씨는 인질극을 벌이다 몇 차례 순간적으로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의 발작 증세를 보였다고 한다. 또 A 양에게는 “미안하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낮 12시 반경 경찰은 “점심시간이 지났으니 A 양과 함께 끼니를 해결하라”며 빵과 우유를 책상에 올려놨다. 이것을 먹으려고 잠시 흉기를 책상에 내려놓았을 때 경찰들이 달려들어 붙잡았다. 인질극을 벌인 지 1시간 10분이 지난 때였다. A 양은 근처 병원으로 가서 치료와 심리상담을 받았다.
인질극이 벌어지자 학교 측은 학생들에게 “교실 밖으로 나가지 말라”고 방송했다. 학부모들에겐 “학교 사정상 방과 후 수업을 취소한다”는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뒤늦게 언론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인질극 소식을 접하고 놀란 학부모 수백 명이 학교로 몰려들었다. 전교생은 995명이다.
교육부는 2014년 학교 범죄 예방을 위해 외부인의 학교 출입 때 반드시 학교보안관에게 신분증을 맡기고 일일방문증을 받도록 했다. 하지만 이날 이런 절차는 없었고, 졸업생 확인도 없이 양 씨는 학교로 들어갔다. 나중에 경찰은 그가 이 학교를 졸업했다고 확인했다. 학교 관계자는 “졸업생이라는 말을 듣고는 학교보안관이 확인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 본인은 실수였다고 말했다”고 해명했다.
검거된 양 씨는 인근 종합병원에서 4시간가량 뇌전증 치료를 받은 뒤 경찰 조사를 받았다. 그는 경찰에서 2013∼2014년 상근예비역으로 군 복무를 할 때 겪은 육체적 정신적 피해를 정부가 보상해주지 않아 범행을 저질렀다고 주장했다. 양 씨는 “군 복무 때 가혹행위와 폭언, 질타, 협박 등으로 뇌전증과 조현병이 발생했다. 2014년 7월 의병제대를 한 뒤 국가보훈처 등에 보상을 요구했는데 해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날 보훈처에 따르면 양 씨는 2014년과 지난해 국가유공자 신청을 했다. 하지만 두 차례 모두 서류 심사를 통과하지 못했다. 그의 주장처럼 뇌전증과 조현병이 군 생활 때문에 생겼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이다. 보훈처 관계자는 “인과관계가 있다고 판단되면 1차 관문인 서류 심사를 통과하는데 그는 서류 심사에서 탈락했다”고 말했다.
양 씨는 어린 시절 겪은 교통사고와 낙상으로 뇌수막염 등을 앓은 것으로 알려졌다. 입대한 2013년 중반부터는 뇌전증이 심해져 몇 차례 발작으로 쓰러지기도 해 치료를 받았다고 한다. 의병제대 직전인 2014년 중반에는 정신건강의학과 치료를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황성호 hsh0330@donga.com·김정훈·김자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