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테러리스트를 변호했나?/예이르 리페스타드 지음/김희상 옮김/244쪽·1만5000원·그러나
범인인 아네르스 베링 브레이비크는 당시 집권여당인 노동당의 청소년캠프가 열린 우퇴위아섬에서 청소년들에게 총기를 난사했다. 이슬람을 혐오하고, 다문화주의에 반대하는 극우주의자에 의해 77명이 희생됐다.
다음 날인 7월 23일 이른 새벽.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다.
혼란스러웠다. 아내는 임신한 상태였고, 역사상 최악의 테러리스트를 자신이 변호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었다. 대학병원 간호사이자 늘 현명한 기준을 제시하는 아내에게 의견을 물었다.
“만약 그 남자가 중상을 입고 병원에 실려 온다면 의사는 수술하고 우리 간호사는 그를 돌봐야 해요. 우리는 그가 누구인지, 무슨 짓을 했는지, 또는 왜 그런 일을 했는지 묻지 않죠. 그 사람의 권리를 지켜주는 것이 당신의 일 아닌가요?”
이 책은 최악의 테러범을 변호한 저자가 ‘악마의 변호사’로 활동한 13개월간의 기록을 담았다. 그가 복기해 낸 일련의 재판 과정을 통해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에 대한 신념과 북유럽 국가의 성숙한 시민의식을 엿볼 수 있다.
민주주의를 파괴하려 한 범인이지만 철저하게 민주적인 과정으로 재판을 진행하는 노르웨이의 법정이 자세히 묘사된다. 저자는 많은 인명을 살상한 살인범이라도 요식적인 재판과 허술한 변론으로 심판받아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변호사가 최선을 다하는 것이 노르웨이 사회가 법치국가로 남도록 지키는 것이며 역설적으로 범인이 파괴하려고 했던 바로 그 체계를 보호하는 일이 된다는 것이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