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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재 교수의 지도 읽어주는 여자]“여성권리를 위해 어디든” 40여년 길 위의 인생

입력 | 2018-03-05 03:00:00

<6> 글로리아 스타이넘과 미국




글로리아 스타이넘은 ‘미투’ ‘타임스 업’ 등 각종 여성운동에서 ‘왕언니’ 역할을 하고 있다. ‘미투’ 운동을 지지하는 의미로 검은색 드레스를 입고 올해 1월 열린 골든글로브 시상식에 참석한 배우들. 동아일보DB


글로리아 스타이넘(84·사진)은 미국 페미니스트의 아이콘이다. 여든을 훌쩍 넘겼지만 여전히 열정적인 비결로 여행을 꼽는다. 실제 그녀는 인생의 절반인 40여 년을 길 위에서 보냈다.

1934년 오하이오주 톨레도에서 태어난 그녀는 어린 시절, 부모와 함께 하우스 트레일러를 타고 캘리포니아와 플로리다, 멕시코만으로 가는 남쪽 길을 여행했다. 11세 때 부모가 이혼하자 고향에 정착한 그녀는 아픈 어머니를 돌보며 학교에 다녔다. 궁핍한 형편으로 생계를 걱정해야 했던 소녀의 유일한 낙은 책이었다.

1952년 동부의 명문, 스미스대 정치학과에 입학한 그녀는 교환학생으로 스위스에 다녀온 후 차석으로 졸업했다. 장학금을 받고 인도로 훌쩍 떠난 그는 콜카타, 뉴델리를 거쳐 모계사회 전통이 남아 있는 남부 케랄라까지 곳곳을 여행하며 새로운 세상을 발견한다. 길에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일상에서 점진적인 변화를 모색하는 간디의 평화로운 운동법에 매혹된다.

귀국한 글로리아는 인종 갈등과 지역 격차, 여성 문제에 집중했다. 뉴욕 ‘플레이보이’ 클럽의 바니 걸스로 위장 취업해 성매매 산업의 실체를 고발한 미모의 언론인으로 유명해졌다. 1972년에는 여성을 위한 잡지 ‘미즈’를 발간해 창간호 30만 부가 완판되는 대성공을 거둔다. 남성은 결혼에 상관없이 ‘미스터’인데 여자만 왜 ‘미스’에서 ‘미세스’로 바꾸어야 하는지 이의를 제기하며 ‘미즈’라는 새로운 호칭 대명사를 제안한 것. 1976년 휴스턴에서 열린 전미여성대회는 그녀를 다양한 인종과 계층의 소수자들을 아우르는 운동가로 성장시켰다.

뉴욕의 화려한 생활에도 익숙했지만 그녀는 미국 내 낙후지역에서 생존을 위한 전쟁을 매일 치르는 저소득층 여성을 외면하지 않았다. 특히 중서부 내륙지역의 체로키 인디언 여성 추장 윌마는 가부장제에서 벗어나 남녀가 조화롭게 공존하는 모계사회를 글로리아가 상상하게 해준 영혼의 멘토였다. 글로리아가 66세 때 연하의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 남성과 올린 소박한 결혼식도 윌마의 주례로 오클라호마에서 진행됐다.

‘미투 운동’과 ‘타임스 업’(Time’s up) 등 여성운동의 구심점이 된 글로리아의 내공은 길에서 축적됐다. 미국 시애틀 인근 위드비섬에 있는 여성 작가를 위한 공간에서 집필한 회고록 ‘길 위의 인생’ 서문에는 영국 산부인과 의사가 등장한다.

김이재 지리학자·경인교대 교수

‘1957년 인도로 가는 길에 낙태를 의뢰한 스물두 살의 미국 여성이 수술을 받을 수 있도록 위험을 감수하고 도와준 의사가 있었다. 약혼을 파하고 미지의 운명을 향한 여정에 오른 여대생에게 그는 두 가지를 당부했다. “첫째, 누구한테도 내 이름을 말하지 마십시오. 둘째, 살면서 당신이 원하는 일을 하십시오.” 영국에서 임신한 여성이 건강상 문제 외에 다른 이유로 낙태할 수 있게 된 것은 10년이 더 지나서였다.’

글로리아는 평생 원하는 일에 열정을 다함으로써 존 샤프 박사와의 약속을 지켰다.
 
김이재 지리학자·경인교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