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산사 주지 금곡 스님
강원 양양 낙산사 가는 길, 그날따라 바람이 몹시 불었다.
최근 낙산사에서 만난 주지 금곡(金谷) 스님은 범종루에 들어서자 안타까움과 미안함이 가득한 눈빛으로 동종을 쓰다듬었다. 자식을 바라보는 그것과 닮았다. 이 종은 스님이 2005년 주지 부임 보름 만에 겪은 화재로 녹아내렸던 동종(옛 보물 제479호)을 복원한 것이다.
낙산사 화재 이후 복원한 동종 앞에 선 금곡 스님. 2011년 스님과 시 ‘나는 아직 낙산사에 가지 못한다’로 공초문학상을 수상한 정호승 시인이 동행하며 낙산사에 얽힌 사연을 나눈 뒤 이곳에서 카메라 앞에 섰다. 양양=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9년 만의 복귀인데 책임감이 더 크게 느껴진다는 게 스님의 말이다. “낙산사는 종단뿐 아니라 불자와 국민들 도움으로 다시 태어난 곳입니다. 그 고마운 마음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낙산사에 가면 치유가 된다’는 말을 듣고 싶습니다. 이곳에 오면 마음이 편해지고 힘든 번뇌도 사라지는 도량이 됐으면 합니다. 낙산사의 왼쪽은 동해, 오른쪽은 백두대간이 펼쳐지죠. 바다와 산이 어우러진 자연과 사람, 문화가 어우러지는 사찰로 가꾸겠습니다.”
스님은 종단 안팎에서 소통의 달인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 행보 때문에 정동영 주호영 의원과 이인제 전 의원 등 여야 가릴 것 없이 정치권 인사들의 발길도 이어진다.
9일 평창 겨울올림픽 개막을 앞두고 문재인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가 낙산사를 찾아 올림픽 성공을 기원했다. 2016년 4월 총선 직후에는 당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 부부가 스님이 회주로 있는 서울 흥천사의 어린이집을 찾기도 했다.
문 대통령과 각별한 인연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스님은 “글쎄요”라며 손사래를 쳤다. 그러면서 스님은 “문 대통령은 젊은 시절 해남 대흥사의 일지암에서 공부한 걸로 알고 있다”라며 “가톨릭 신자이지만 좋은 일이라면 종교의 차이에 구애받지 않는 분 아니냐”라고 했다.
김종수 신부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종사모’는 스님이 맺어온 인연의 깊이를 짐작할 수 있는 사례다.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 당시 종교계에서 남북 교류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스님과 원불교 정인성 교무 등이 그 멤버다. “김 신부님이 워낙 깨어 있는 분이고 활달해 그분 핑계로 모였죠. 이번 올림픽이 남북이 함께 평화를 추구할 수 있는 디딤돌이 되기를 바랍니다.”
스님은 우리 사회의 소통과 화해를 위한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진보도 중요하지만 보수의 기(氣)도 받아서 국민을 위한 길을 가야 합니다. 허물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 허물마저 사랑과 자비로 포용한다면 불필요한 반목이 사라지죠. 함께 길을 가고, 함께 길을 찾아나서는 한 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양양=김갑식 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