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감고 빗는 수고로움 없으니…” 노년 탈모 선뜻 수용한 정약용

입력 | 2018-02-15 03:00:00

옛 선비 ‘祝壽’ 통해 본 노년의 삶




과거에는 ‘축수’와 그림을 통해 행복한 장수에 대한 소망을 표현했다. 왼쪽부터 수명을 상징하는 신선인 수노인을 그린 김홍도의 ‘필선객도’와 수노인이 거북이를 끌고 가는 모습을 담은 김명국의 ‘수로예구’, 남송시대에 새겨진 것으로 추정되는 중국 광시좡족자치구 융푸현에 있는 백수암(百壽岩). 국립중앙박물관·간송미술관 제공

“집안 살림을 도맡아 처리하는 어진 부인과 해로하고, 자식들은 일찌감치 급제해 높은 관직에 오르네. 귀도 밝고 눈도 밝으며 술과 음식도 잘 먹는 데다가 책읽기도 거르지 않는 것. 이것이 바로 완벽한 노년의 삶이다.”

조선 중기의 문신 조경(1586∼1669)은 저서 ‘용주유고(龍洲遺稿)’에서 행복한 노년의 기준을 이렇게 제시했다. 한국과 중국에서는 장수를 기원하고 올바르게 늙는 방법을 담은 글을 쓰는 ‘축수(祝壽)’라는 전통이 있었다. 김우정 단국대 한문교육과 교수가 최근 발표한 논문 ‘축수의 문학적 전통과 노년 인식’ 등에서 과거 이상적으로 여겼던 노년의 삶을 살펴봤다.

○ 피할 수 없는 슬픔, 노화

축수는 중국에서 유래됐다. 춘추시대부터 시작해 위진시대를 거치면서 경제적으로 풍요롭던 양쯔강 이남 지역에서 발달했고, 명나라 때 꽃피웠다. 한반도에서는 조선중기에 이르러 본격적으로 문학의 한 장르로 자리 잡았다.

“눈을 가늘게 뜨고 멀리 보면 오히려 분별할 수 있는데 눈을 크게 가까이 보면 도리어 희미해진다. 배고픈 생각은 자주 있으나 밥상을 대하면 먹지 못한다.”

성호 이익(1681∼1763)은 ‘노인십요’에서 노화로 인한 신체 변화를 재치 있으면서도 씁쓸하게 묘사했다. 오래 산다는 것은 축하받을 일이지만 피해 갈 수 없는 노화에 대한 한탄은 축수의 대표적 특징 중 하나다.

노화를 인정하며 적극적으로 수용한 경우도 있었다. 다산 정약용(1762∼1836)은 ‘여유당전서’에서 “감고 빗는 수고로움 없고, 백발의 부끄러움도 면한다”며 탈모의 스트레스를 긍정적으로 풀어냈다. 평생 읽고, 쓰는 일을 멈추지 않았던 다산은 말년에 노안(老眼)으로 고생했다. 그러나 “강호의 풍광과 청산의 빛으로도 한계를 채우기에 충분하다”며 늙어가는 과정을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 행복의 조건, ‘건강과 경제력’

전통 사회에서 노인은 자식에게 봉양을 받아야 했기에 자녀들에게 윤택한 경제생활을 넌지시 주문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사방 만리를 떠도느라 부모는 아무 데도 의지할 곳이 없고, 소식조차 서로 전하지 못하다가 늘그막에 혹 미관말직을 받아본다 한들 평생 저버린 바를 어찌 보상할 수 있겠는가.”

고려의 문신 최해(1287∼1340)가 남긴 ‘졸고천백’의 한 구절이다. 축수라는 형식을 빌려 아들에게 빨리 출세해 부모를 넉넉히 봉양하라는 압박을 담고 있다.

화목한 가정을 이루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삶이라는 메시지도 발견할 수 있다. 조선 후기의 문신 정원용(1783∼1873)은 보수적인 사대부 가문의 양반이었지만 당시로선 파격적으로 아내와 며느리에게 축수를 남기기도 했다.

“그대처럼 좋은 아내 있으니, 산업이야 내 걱정할 일 아니지요. 비록 배고픔과 추운 걱정 있더라도 마음이 편하면 아무 두려움이 없소.” 부부의 해로를 노년의 조건으로 꼽은 사대부의 글에서 행복한 가정을 이룬 노인의 풍요로움이 느껴진다.

김우정 교수는 “축수를 통해 오래 사는 것 자체보다도 품격 있는 노년의 삶을 추구했던 선조들의 전통을 발견할 수 있다”며 “노인 인구가 늘어나는 우리 사회에 진정한 늙음이란 무엇인지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