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수 정치부 차장
지난달 2일 임기를 시작한 최재형 감사원장 얘기다. 판사 출신인 그는 국회 인사청문회 때 ‘미담 제조기’로 불렸다. 두 아이를 입양한 게 뒤늦게 화제가 됐지만 그는 사석에서 늘 “민법에는 혼인과 입양으로 가족을 구성하게 되어 있다”며 별일 아닌 것처럼 답한다. 6·25전쟁 때 해전에 참전한 아버지, 해군 복무 중인 아들을 거론하며 의원들이 “병역 명문가 아니냐”고 하자 그는 “장조카가 척추 이상으로 복무를 안 해서 그 표현은 좀 어렵지 않나”라고 했다. “청문회를 지켜보면서 움츠러들었던 어깨가 펴졌다”고 뿌듯해하는 판사들도 개인적으로 여럿 만났다.
최 원장은 신년 인사를 겸한 감사원 직원 특강 때 “누구든 틀릴 수 있다는 겸손한 자세로 일하자” “저뿐만 아니라 말단 직원들까지 함께 대한민국을 위해서 가자” 등 기본과 원칙을 강조했다고 한다. 한 참석자는 “소박한 된장국에 밥 한 그릇 정갈하게 먹은 기분이었다”고 했다. 감사원에선 그를 ‘살아 있는 법과 원칙’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행동으로 본인이 한 말에 책임진다는 뜻이 담겨 있다. 차량 2부제에 대비해 홀짝 번호 두 대였던 관용차를 한 대로 줄이라고 지시하고, 개인 약속이 있으면 콜택시로 퇴근하는 에피소드들이 최근 관가와 정치권에서도 회자되고 있다.
감사원은 헌법기관이다. 헌법에 감사원 관련 조항이 총 130조 중 4개가 있다. 그런데 순서가 헌법에서 대통령, 국무총리와 국무위원, 국무회의, 행정각부에 이은 정부 분야의 맨 끝이다. 형식은 대통령 산하, 내용은 독립기관이라는 모순이 여기서 잉태된 것이다. 그나마 이것도 5·16군사정변 직후 박정희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 개헌할 때 처음 들어갔다. 1963년 이후 4차례 개헌 때는 감사원장 궐위 관련 대목이 삭제된 것을 빼고 나머지는 토씨 하나 바뀌지 않았다.
삼권분립, 견제와 균형이라는 원칙 아래 설계된 미국은 이와 좀 다르다. 감사원과 비슷한 기능을 하는 회계감사원(GAO)은 의회 산하기관 중 조직과 예산이 가장 방대하다. 국민 세금 낭비를 막는 ‘일하는 국회’의 상징 같은 존재다. 여당은 얼마 전 감사원을 국회 소속으로 바꾸는 대안을 내놨다. 대통령 권한 축소에 관심이 큰 야당도 호응할 수 있다. 국회 권한을 찾고, 감사원을 둘러싼 해묵은 논란을 국회가 모처럼 앞장서 해결할 기회다.
“감사원의 독립을 확고히 지켜 나가겠다. 외부로부터의 어떠한 부당한 간섭에도 흔들림 없이 독립하여 감사를 수행할 수 있도록 온 힘을 다하겠다.” 최 감사원장이 다짐한 제1원칙이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그는 어려운 결정을 앞두고 기도를 한다고 한다. 입양 때도 그랬고, 감사원장직을 수락하면서도 그랬을 것이다. 기자가 덧붙이고 싶은 말은 한마디뿐이다. 아멘.
정원수 정치부 차장 needjung@donga.com